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이하 낸드) 시장이 'AI(인공지능) 인프라 확장' 수혜를 타고 성장 국면에 들어섰다. 고용량·고성능 기업용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가 AI 서버의 핵심 저장장치로 자리 잡으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간 주도권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13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낸드 시장 규모는 1473억달러(220조원)로 추정된다. 지난해 대비 약 2배 성장한 수준이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19% 증가한 1757억달러(26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낸드 시장의 중심축도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모바일·PC 등 소비자용 SSD 중심에서 데이터센터용 eSSD(기업용 SSD)로 무게가 옮겨가고 있다. 지난해 전체 낸드에서 eSSD 비중은 29%에 그쳤지만, 올해는 41%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변화의 배경에는 AI 서비스 진화가 있다. SSD는 단순 저장장치를 넘어 추론형 AI에서 메모리 병목을 완화하는 핵심 장치로 부상했다. 대형언어모델(LLM) 구동 과정에서 대화 맥락 유지를 위해 생성되는 'KV 캐시' 데이터를 HBM(고대역폭메모리)이 아닌 SSD에 저장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고가의 HBM 의존도를 낮추면서 전체 시스템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용량 중심의 eSSD 수요가 급증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8세대(V8), 9세대(V9) 낸드 전환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용량·고성능 제품 비중을 높여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V9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키오시아 역시 차세대 제품 확대를 위해 구형 낸드 생산 축소 계획을 고객사에 전달한 상태다.
V9은 셀 하나에 4비트를 저장하는 QLC(Quadruple Level Cell) 구조의 낸드 생산에 유리하다. 동일 면적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어 초고용량 SSD 구현에 이점이 있다. SK하이닉스는 321단 QLC 기반 제품 'PQC21'을 양산해 델 테크놀로지에 공급을 시작했다. 321단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양산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6세대 PCIe(Peripheral Component Interconnect Express)가 적용된 eSSD 'PM1763' 양산을 준비 중이다. PCIe는 데이터를 주고받는 표준 연결 기술로 세대가 올라갈수록 데이터 전송 속도와 대역폭이 크게 향상된다. AI 서버처럼 대량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해야 하는 환경에서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PM1763은 5세대 대비 성능이 2배, 전력효율은 60% 개선됐다. 최대 64TB(테라바이트) 용량 제품도 출시될 예정이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에 주요 저장장치로 활용될 예정이다. 신형 eSSD는 발열 관리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다. 액체 냉각 환경을 고려해 SSD 두께를 기존 15mm에서 9.5mm로 줄였다. 고집적 서버 환경에서의 공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설계다.
eSSD 중심으로 생산이 재편되면서 소비자용 SSD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2TB(테라바이트) SSD(9100 프로)는 6개월 전 약 40만원 수준이었던 시장 판매 가격이 최근 100만원까지 올랐다. 낸드 가격 상승이 D램과 함께 스마트폰·PC 등 완제품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메모리 제조사의 올해 1분기 평균 낸드 판매가격은 전분기 대비 60~70%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낸드 업체들이 수익성이 높은 eSSD 생산 확대를 위해 기존 라인을 전환하면서 일반 SSD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차세대 저장 기술인 HBF(고대역폭플래시)는 아직 개발 초기 단계로 용량 측면의 장점은 있지만 전력 효율 등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