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제조 강국 넘어 '피지컬 AI'의 표준으로" …세계 AI 리더 입 모아

박건희 기자
2026.04.27 06:00

[2026 키플랫폼] 김성열 산업통상부 산업성장실장·임우형 LG AI연구원장·제이 리 메릴랜드대 교수·첸 이밍 난양공과대 교수·모한 라제쉬 엘라라 싱가포르기술디자인대 교수 대담

23일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에서 머니투데이 주최로 진행된 '2026 키플랫폼' 오찬 간담회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AI(인공지능) 기술의 중심축이 가상 세계를 넘어 실제 물리적 세계에서 움직이는 '피지컬 AI'로 옮겨간다.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2026 키플랫폼'(K.E.Y. PLATFORM 2026)에 참석한 글로벌 AI 전문가들은 피지컬 AI가 제조 공정 혁신을 넘어 세계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같은 변화를 한국이 주도하려면 배터리·반도체·조선 등 제조업 기반의 확실한 강점을 살려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빠르게 피지컬 AI의 '기준'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2~24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호텔에서 2026 키플랫폼이 열린 가운데, 국내외 AI 산업을 이끄는 주요 인사가 간담회를 통해 AI 시대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간담회에는 국내 산업 AI 정책을 이끄는 김성열 산업통상부 산업성장실장을 비롯해 '엑사원' 개발로 한국을 AI 강국 대열에 올린 LG AI 연구원의 임우형 공동 연구원장, 폭스콘 전 부회장이자 산업 AI의 세계적 석학 제이 리 메릴랜드대학교 플라크 석좌교수 및 산업 AI 센터장, 싱가포르 AI R&D(연구·개발)를 주도하는 첸 이밍 난양공과대 교수와 모한 라제쉬 엘라라 싱가포르기술디자인대 교수가 참석했다.

산업 AI 세계적 석학 "LG, 매우 중요한 일 해내"
23일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에서 머니투데이 주최로 진행된 '2026 키플랫폼' 오찬 간담회. 제이 리 메릴랜드 대학교 플라크 석좌교수 및 산업 AI 센터장.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산업 AI의 기틀을 마련한 석학인 리 석좌교수는 "산업 AI는 단순히 기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배가하는 기술"이라며 "전 세계 제조 현장이 겪고 있는 청년 구인난 등을 해결할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 AI는 공장에서 수집한 데이터에 알고리즘을 결합해 전체 생산 시스템의 상태를 진단하고 향후 발생할 결함까지 예측하는 AI다. 본격적으로 공장에 투입될 경우 작업 현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세 결함을 빠르게 찾아내 수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고온·고압의 극한 환경에서 작업자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할 솔루션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는 "산업 AI라는 개념은 2000년대 초반부터 존재했지만, LLM(거대언어모델)과 오픈 데이터 생태계의 등장으로 새로운 논의의 장이 열렸다"며 "인간의 활동으로 생성한 정보를 넘어 이제는 기계 센서가 수집한 정보까지도 데이터로 활용하는 시대"라고 했다. 또 "산업 AI를 학습할 현장 데이터를 수집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가 산업 AI 개발을 주도하는 하향식 체계와 민간이 산업 AI를 중심으로 가치사슬을 새롭게 구축하는 상향식 체계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임 원장은 이에 "LG의 AI 연구는 산업 AI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LLM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산업 AI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예측 유지보수'(Predictive Maintenance)나 '비전 검사'(Vision inspection)와 같은 핵심 기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예측 유지보수는 AI가 기계의 고장을 예측해 미리 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비전 검사는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분석해 제품의 불량 여부를 정밀하게 검사하는 기술을 말한다.

임 원장은 "산업공학적 접근에 딥러닝 기술을 더해 훨씬 정교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됐고, 지금은 LAM(대규모 행동 모델)이나 VLM(비전 언어 모델)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리 석좌교수는 "LG는 일찍부터 산업 AI의 중요성을 인지해 매우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다"고 공감하며 "산업계는 결국 산업 AI를 통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23일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에서 머니투데이 주최로 진행된 '2026 키플랫폼' 오찬 간담회. 임우형 LG AI 연구원장.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국가 AI 이니셔티브' 내놓은 싱가포르, 제조 데이터 '총집합' 나선 한국
23일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에서 머니투데이 주최로 진행된 '2026 키플랫폼' 오찬 간담회. 이밍 첸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 교수.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싱가포르는 한국과 함께 세계적으로 주목할만한 'AI 강자'로 꼽힌다. 정부 주도의 강력한 AI 지원책과 풍부한 다국적 기업 생태계는 싱가포르가 가진 대표적인 장점이다.

모한 교수는 "싱가포르 정부는 AI가 불러올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싱가포르 경제 자체가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본다"며 "점진적이고 미미한 변화가 아닌 확실한 변화를 만들겠다는 각오"라고 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23년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 글로벌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고 AI 전문 인력을 1만 5000명 수준으로 3배 이상 늘리겠다는 범부처 '국가 AI 전략 2.0'(NAIS 2.0)을 발표했다.

첸 교수는 "싱가포르 내 모든 대학생에게 재학 기간 4년 내내 구글 AI 에이전트를 무상 지원하는 정책이 2주 전 발표됐다"며 "AI가 내재화된 대졸자를 양성하겠다는 건데, 기업 입장에서는 대졸자 신입사원 1명을 고용할 때 이들이 다룰 수 있는 에이전트 무리까지 함께 고용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주력 산업이 반도체와 조선업이라면 싱가포르의 주력 산업은 전자·가전, 항공 정비였고 지금은 산업 AI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주요 업종을 물색하는 과정"이라며 "생태계의 구축점이 될 주요 업종을 정해 이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부가 산업과 일자리가 따라올 수 있도록 설계 중"이라고 했다.

23일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에서 머니투데이 주최로 진행된 '2026 키플랫폼' 오찬 간담회. 김성열 산업통상부 차관보.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한국에서는 산업통상부가 산업 AI 전환을 목표로 올해 약 7000억 원을 투입한다. 이를 위해 민관 합동 협력체 '맥스(M.AX) 얼라이언스'가 지난해 출범했다. 반도체·휴머노이드·자율주행차 등 분과별 제조 데이터를 확보해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게 골자다. 아울러 2030년까지 AI 팩토리 500개를 만들고 디스플레이·조선 등 제조 공정에 특화한 휴머노이드도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김 실장은 "생산 인구의 감소, 젊은 층의 제조업 기피, 제조 노하우를 가진 암묵지의 소멸 등 한국의 핵심 자산인 제조업이 당면한 문제를 타개하려면 제조 AI 전환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특히 "제조 AI의 핵심 인프라인 제조 데이터를 모아 이를 기반으로 실제 우리 산업계에 적용할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미 지난해 100개 공장을 대상으로 AI 팩토리로의 전환을 시작했고, 올해 100개 공장이 추가된다"며 "제조 AI 개발에 있어 중요한 데이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리 석좌교수는 "데이터 활용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AI 팩토리 전환에 집중하는 건 세계적인 추세"라고 공감하면서도 "다만 한국이 장기적으로 산업계 자산을 확보하려면 시장 가치의 80%를 차지하는 단 20%의 중요한 산업군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국 제조 환경에 맞는 '기준점' 데이터 세트 구축해야"
23일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에서 머니투데이 주최로 진행된 '2026 키플랫폼' 오찬 간담회. 모한 라제쉬 엘라라 싱가포르 기술디자인대학교 교수.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전문가들은 풍부한 제조업 생태계를 가진 한국이 글로벌 산업 AI의 기준이 될 '벤치마크 데이터세트'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벤치마크 데이터세트는 AI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평가 체계로 일종의 'AI 시험지'다.

모한 교수는 "AI는 사람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80만 줄의 코딩을 생성해내지만, 이 중 단 한 줄이라도 오류가 있을 경우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AI의 결과를 검증하고 평가하는 능력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제조업을 기반으로 산업 AI 인증을 주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조선업, 반도체처럼 평판이 우수한 산업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산업 AI를 개발할 때) 한국의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이 매우 설득력 있다"며 "데이터베이스만 제대로 갖춘다면 제조 분야 AI의 표준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리 석좌교수는 "미국은 2008년 NASA(미국 항공우주국) 주도로 'PHM(산업 AI 및 예지 보전) 데이터 챌린지'를 진행했는데, 애플 등 유수 IT기업이 참전해 NASA의 항공 엔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예측 모델을 만들었고 이때 기업들이 활용한 데이터세트가 지금까지 이 분야의 기준으로 쓰이고 있다"며 "제조 현장에서 무조건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기보다는 실제 머신러닝(기계학습)에 적합한지, 현장 투입 시 수익성이 있는지, 향후 벤치마크로도 통용될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임 원장도 "지금도 여러 글로벌 제조용 데이터세트가 존재하지만, 한국이 제조에 강한 만큼 우리 환경에 맞는 데이터세트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은 현실적으로 자사 데이터를 전면 공개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각 기업이 각자의 데이터로 실험하고 개발한다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이 보유한 공공 제조 데이터를 기반으로 표준화된 데이터세트가 제공된다면 기업들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맥스 얼라이언스는 산업 현장의 데이터를 공유해 참여하는 모든 기업의 생산성과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 최종 지향점이 있다"며 "출연연 자원 등을 활용한 공공 데이터 구축도 정부가 각별히 들여다볼 것"이라고 했다.

23일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에서 머니투데이 주최로 진행된 '2026 키플랫폼' 오찬 간담회. 왼쪽부터 최석환 산업1부장, 모한 라제쉬 엘라라 싱가포르 기술디자인대학교 교수, 임우형 LG AI 연구원장, 이밍 첸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 교수, 제이 리 메릴랜드 대학교 플라크 석좌교수 및 산업 AI 센터장, 산업통상부 김성열 차관보.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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