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전기료 '뚝'…하얀 지붕의 비밀[넷제로케이스스터디]

폭염에도 전기료 '뚝'…하얀 지붕의 비밀[넷제로케이스스터디]

권다희 기자
2026.08.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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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서울시 '쿨루프'
차열페인트 칠하자 지붕 표면온도 낮아져
서울시 실증서 냉방에너지 평균 26.4%·최대 40.8% 절감
노후주택 밀집 시공하면 도시 열섬현상 완화 효과 기대

[편집자주]  녹색전환·탄소배출 저감은 거대한 과제이지만 동시에 할 수 있는 데에서부터 구체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머니투데이가 탄소배출 저감과 에너지전환을 향해 가는 '현재 진행형' 사례들을 매주 소개합니다.
서울 중랑구 망우동 소재 나숙자씨 주택 옥상. 짙은 회색이었던 옥상에 차열페인트를 칠했다./사진=권다희 기자
서울 중랑구 망우동 소재 나숙자씨 주택 옥상. 짙은 회색이었던 옥상에 차열페인트를 칠했다./사진=권다희 기자

#.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주택은 지난달 전기요금이 전년 동월보다 약 5만원 이상 줄었다. 전기 사용량이 30% 이상 감소한 덕분이다.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지붕이었다. 옥상을 밝은 색 차열페인트로 덮은 뒤 나타난 변화다.

#. 서울 중랑구 망우동 나숙자(83세)씨 집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확인됐다. 나씨는 "7월 전기요금이 지난해보다 1만원 이상 덜 나왔다"고 했다. 옥상을 밝은 회색 차열페인트로 칠한 지 석 달여 만이다.

차열페인트 칠한 지붕, 표면온도 8~11℃ 낮아

두 가구는 모두 서울시의 '쿨루프' 사업에 참여해 올해 봄 옥상 페인트를 새로 칠했다. '차가운 지붕'이라는 뜻의 쿨루프는 태양광을 잘 반사하고, 흡수한 열은 외부로 방출하는 도료를 지붕에 발라 건축물에 유입되는 열을 차단한다. 페인트 색상도 빛을 반사하는 밝은 색이 많다.

지난 10일 찾은 나숙자씨 집은 지어진 지 35년가량 된 주택이다. 옥상과 맞닿은 최상층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오래된 옥상 바닥에 금이 가 빗물이 새기도 했다. 시공업체는 지난 4월 말 갈라진 부분을 보수하고 방수 작업을 한 뒤 차열페인트를 칠했다.

이 주택의 옥상에 올라가 잰 이날 오전 10시17분 망우동의 기온은 28℃였다. 열화상카메라로 측정한 결과 차열페인트를 칠하지 않은 옥상 가장자리는 43.1℃, 흰색으로 도장한 면은 34.9℃였다. 불과 몇 걸음 사이에 표면온도가 8℃ 이상 벌어졌다.

수치로 확인된 표면온도 차 외에도 나씨가 반긴 변화는 방수와 미관 개선이었다. 나숙자씨는 "사업을 몰라 신청하지 못한 이웃들이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할 정도"라며 "물 새던 곳도 막았고 무엇보다 옥상이 하얗고 깨끗해진 점도 좋다"고 말했다.

나숙자씨 집 옥상에서 측정한 온도. 차열페인트를 도장한 부분이 그렇지 않은 곳 보다 온도가 낮다./사진=권다희 기자
나숙자씨 집 옥상에서 측정한 온도. 차열페인트를 도장한 부분이 그렇지 않은 곳 보다 온도가 낮다./사진=권다희 기자

지붕만 바꿨는데…여름 냉방 에너지 사용량 '뚝'

같은 날 확인한 인근의 또 다른 주택에서도 미도장 면은 46.6℃, 도장 면은 약 36℃로 10℃ 넘게 차이가 났다. 이 같은 온도 차이는 밝은 색상과 도료에 포함된 차열 안료의 기능에서 비롯된다.

차열페인트 시공을 맡았던 두온에너지원의 정찬수 이사는 "짙은 녹색이나 검은색 계열은 태양열을 흡수하지만 밝은색은 상당 부분 반사한다"며 "차열 안료가 들어간 기능성 도료는 열 흡수를 더 줄이고, 흡수된 열도 바깥으로 방출한다"고 설명했다.

정 이사에 따르면 옥상 표면온도가 10℃가량 차이 나면 실내온도는 통상 2.5℃ 안팎 차이가 나고, 표면온도 차이가 30℃까지 벌어지면 창문 수와 단열 상태 등 건물 조건에 따라 실내온도는 최대 5℃가량 낮아질 수 있다. 옥상에서 실내로 전달되는 열이 줄면 그만큼 에어컨 가동 부담도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SH 가양8단지 최상층 6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증에서도 효과가 확인됐다. 쿨루프를 시공한 4가구와 시공하지 않은 2가구를 비교한 결과 도장 면의 표면온도는 최대 9.2℃, 실내온도는 최대 1.8℃ 낮았다. 냉방에너지 사용량은 평균 26.4%, 최대 40.8% 줄었다.

반면 겨울철에는 도장 여부에 따른 실내온도에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햇빛을 반사하는 만큼 겨울에 집이 더 추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실증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지난 10일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소재 한 주택. 같은 건물의 한쪽은 차열페인트를 칠했고(사진 왼쪽), 다른 한쪽은 칠하지 않았다. 같은 건물임에도 차열페인트를 칠한 영역의 온도가 약 10도 가까이 낮았다./사진=권다희 기자
지난 10일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소재 한 주택. 같은 건물의 한쪽은 차열페인트를 칠했고(사진 왼쪽), 다른 한쪽은 칠하지 않았다. 같은 건물임에도 차열페인트를 칠한 영역의 온도가 약 10도 가까이 낮았다./사진=권다희 기자

뉴욕은 2009년부터 흰 지붕…건물 정책으로 자리 잡은 쿨루프

쿨루프를 도시 차원의 폭염·에너지 정책으로 확산시킨 대표적인 곳은 미국 뉴욕이다. 뉴욕시는 2008년 건축법을 통해 대부분의 신축 건물 지붕 면적 가운데 75% 이상을 흰색 반사도료나 반사율이 높은 자재로 시공하도록 했다. 이듬해인 2009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노후 건물의 지붕을 흰색으로 칠하는 'NYC 쿨루프'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비영리시설과 공공건물 등을 중심으로 확대됐다. 단순히 개별 건물의 냉방비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어두운색 지붕과 포장도로가 열을 머금어 도심 온도를 높이는 열섬현상을 완화하려는 목적이었다. 뉴욕시는 지붕 온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시공을 지원하고 건물주에게 교육과 상담도 제공했다.

텍사스주 댈러스가 녹색건축 조례에 쿨루프 기준을 넣었는 등 미국에서는 쿨루프가 확산하는 추세다. 미국 에너지부 주도로 연방정부 역시 쿨루프 확산에 나섰다. 냉방에너지와 탄소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공공건물 운영비도 낮출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에서는 11개 주가 보조금, 8개 주가 융자 방식의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출처=뉴욕시 정부 통합 행정·시민 서비스 포털인 ‘마이시티(MyCity)’ 홈페이지 중 쿨루프 홍보 영상 캡쳐
출처=뉴욕시 정부 통합 행정·시민 서비스 포털인 ‘마이시티(MyCity)’ 홈페이지 중 쿨루프 홍보 영상 캡쳐

'밀집시공'으로 효과 극대화…도시 열섬효과 완화 가능

해외 주요 도시들처럼 폭염 취약계층과 노후 건물을 중심으로 도심 열섬현상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은 국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올해 시비 7억원을 투입해 시작한 '서울형 차열페인트 도장사업'이 대표적이다. 지원 대상은 폭염에 취약한 고령자·장애인·영유아 가족·온열질환자 등이 거주하는 최상층 주택과 노인·장애인 복지시설이다. 상반기에 주택 133가구와 복지시설 19곳 등 152곳, 총 1만8122㎡를 시공했다. 대상 건물의 93%인 142곳은 준공된 지 20년 이상 된 노후건물이었다.

특징은 대상지를 흩어놓지 않고 저층 노후주택이 밀집한 지역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동대문구 장안1동·용두동 27가구, 중랑구 망우본동 12가구, 성북구 길음동·정릉3동 34가구, 노원구 23가구 등 96가구를 '차열페인트 특화지구'로 묶었다. 예산을 저층 노후주거지에 집중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국고보조 사업 등까지 합쳐 올해 총 29억원을 들여 민간 186곳, 공공 144곳 등 330곳에 쿨루프를 시공할 계획이다. 전체 면적은 축구장 약 8개 규모다. 하반기에는 국공립어린이집과 경로당, 복지시설, 무더위쉼터 등을 추가로 지원한다.

쿨루프가 개별 주택을 넘어 동네 단위로 확대되면 도시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유지현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친환경건물사업팀장은 "저층 노후주거지는 통풍이 어렵고 바람길이나 공원이 부족한 곳이 많다"며 "지붕을 밀집 시공하고 해마다 면적을 넓혀가면 지역 온도를 낮추고 도시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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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다희 기자

머니투데이 산업1부 권다희입니다. 산업과 지역의 녹색전환, 재생에너지 분야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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