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배터리 구독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테슬라와 중국 업체 등이 참전한 전기차 가격 경쟁에서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단순히 차량을 파는 제조사를 넘어 금융과 서비스를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전기차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시장 점유율을 사수하겠다는 전략이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전기차 초기 구매 가격을 낮추기 위한 새로운 사업 모델로 배터리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다. 이는 전기차 가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능이 떨어져 자산 가치가 하락하는 배터리 소유권을 차량과 분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배터리 비용을 초기 구매가에서 제외해 소비자 체감 가격을 낮출 수 있다.
현대차가 배터리 구독 서비스를 추진하는 건 중국 브랜드의 공세가 임계점을 넘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BYD가 지난달 누적 판매 1만대를 넘어선 배경에는 실구매가 2000만원대의 전기 SUV(다목적스포츠차량) '돌핀'과 3000만원대 전기 세단 '씰'을 앞세운 파격적인 가격 정책이 있다. 테슬라 돌풍도 거세다. 중국산 전기 세단 '모델 3'와 전기 SUV '모델 Y' 2종을 중심으로 지난달 처음으로 월간 판매량 1만대를 돌파했다.
하반기로 갈수록 가성비 경쟁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실제로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등 수입차 업체는 올해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BYD의 한국 시장 연착륙에 이어 중국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지커도 올 하반기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뒤이어 체리자동차와 샤오펑, 둥펑자동차, 샤오미 등도 한국 진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전기차 전환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변수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의 배터리 구독 모델은 가격 저항선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제조 역량에 금융·구독 서비스를 결합해 점유율을 더 뺏기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일단 현대차그룹도 가격 인하에 나선 상황이다. 현대차는 지난달 '아이오닉5·6·9', '코나 일렉트릭'을 계약 구매하는 고객에게 100만원 할인 혜택을 제시했다. 기아는 올해 초 'EV6' 전 모델 가격을 300만원씩 낮췄고 'EV5' 롱레인지 모델의 판매가도 기존 가격에서 280만원 인하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연합(EU)으로 수입된 중국산 자동차는 전년 대비 30.7% 증가한 100만6000대로 집계됐다. 송호성 기아 사장이 이달 초 CEO(최고경영자) 인베스터 데이에서 "중국 기업들의 저가 모델 출시로 점유율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직접 우려를 표한 이유다.
이에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거점 시장에서 주력 전기차 모델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펴고 있다. 기아는 스페인에서는 폭스바겐 등 경쟁사의 신모델 출시에 맞춰 'EV4' 가격을 8300유로(약 1430만원) 이상 인하했고, 미국에서는 2026년형 'EV6'를 이전 모델보다 5000달러(약 740만원) 낮게 책정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