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찾아간 강원도 삼척시 교동의 한 한적한 주택가. 겉보기에는 깔끔하게 지어진 평범한 타운하우스 단지처럼 보이지만 이곳의 실체는 조금 특별하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고, 남는 전기는 수소로 저장했다가 다시 전기로 쓰면서 냉난방에는 지열과 연료전지 폐열을 활용하는 '통합 수소 시범단지'이기 때문이다.
더욱 특별한 건 단지 실험공간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삼척시가 운영하는 이 수소타운은 2024년 9월부터 삼척시청 소속 여자 핸드볼팀 선수들의 실제 보금자리가 됐다.
현재 선수 10여명이 한 주택당 4명씩, '1인 1실' 기숙사 형태로 거주하며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이 적용된 주거단지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타운하우스 내 주택 한 곳은 삼척시 홍보용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돼 외부 방문객이나 시청 방문 손님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이 단지는 2024년 6월 인증과 시운전에 들어간 뒤 같은 해 9월부터 2025년 3월까지 본격적인 데이터 수집·실증 과정을 거쳤다. 실험실 안의 설비가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는 환경에서 에너지 시스템을 검증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수소타운의 에너지를 책임지는 건 일차적으로 주택과 홍보관, 주차장 등에 설치된 109킬로와트(kW) 규모의 태양광 패널이다. 낮에만 전기를 만들 수 있고, 사용량보다 많이 생산되면 전기가 버려질 수밖에 없는 태양광 발전의 한계를 '수소'로 푼게 눈에 띈다.
삼척 수소타운은 남는 전기를 수전해 설비, 즉 물 분해 장치로 보낸다. 이 설비는 시간당 약 271g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부피로 환산하면 기체 수소 약 3㎥(0℃, 1기압 기준)에 해당된다. 생산된 수소는 저장 장치에 넣기 쉽도록 압력을 높여 금속수화물 저장 모듈에 보관된다. 현재 단지 내에는 높이 약 2.5m의 저장 모듈 4개가 설치돼 있다. 모듈 하나당 30kg씩, 총 120kg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다.
밤이 되거나 장마철처럼 태양광 발전량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미리 저장해둔 이 수소를 꺼내 연료전지에 넣는다. 수소가 산소와 반응하며 다시 전기를 만들어내고, 이를 선수들이 거주하는 주택과 통합관리센터 등에 보낸다. 그냥 버려질 수 있는 태양광 잉여 전력을 수소 생산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삼척 수소타운은 수소 보관 시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압 기체나 영하 253℃의 냉각이 필요한 액화수소 대신 금속을 이용한 저장 기술을 택했다. 특수한 금속 입자가 스펀지처럼 수소를 머금게 하는 방식이다.
온도가 낮으면 수소가 금속 입자에 달라붙어 금속수소화물(Metal Hydride) 형태로 저장되고 에너지가 필요할 때 온도를 높이면 수소가 다시 기체 상태로 분리된다. 고압으로 수소를 밀어 넣거나 극저온으로 액화하는 방식과 달리, 주거지 인근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수소를 저장할 수 있다는게 강점이다.
수소 저장에 금속을 이용할 경우 부피 효율도 높다. 액화수소가 기체 대비 약 600배의 부피 절감 효과를 낸다면, 이곳의 고체 수소 저장 방식은 약 800배 수준의 효율을 낼 수 있다. 폭발 위험은 낮추면서도 좁은 공간에 에너지를 밀도 있게 저장할 수 있어 주택가에 적용하기 적합한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단점은 무게가 많이 나가 이동형 저장장치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인데, 주거단지나 건물형 에너지 저장 설비로 사용할 때 부각되지 않는게 문제다.
냉난방과 온수에는 지열 히트펌프 기술이 동원된다. 단지 안에는 약 40℃의 온수를 저장해두는 열 탱크가 있고, 이 온수를 주택에 공급한다. 여기에 연료전지가 전기를 만들 때 발생하는 폐열도 온수나 난방에 보충해서 쓴다.
전기만 수소와 태양광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열에너지까지 지열과 폐열을 함께 활용하는 구조다. 전기로는 태양광과 수소를, 열로는 지열과 연료전지 폐열을 쓰는 통합 에너지 시스템인 셈이다.
시공 초기 열교환기 쪽 정비가 충분하지 않아 지열을 공급해도 온수와 난방 효율이 떨어지는 상황도 잠시 발생했지만, 이 외의 문제는 없었다. 현장 시설을 관리하는 전영훈 DH2에너지 안전관리책임자는 "선수들이 큰 불편 없이 거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양광 전기를 저장할 때 흔히 떠올리는 배터리 에너지저장시스템(BESS) 대비 이 실증단지가 택한 수소의 장점에 대해 전 책임자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효율이 떨어지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와 폐배터리 처리 문제가 뒤따른다"며 "반면 수소는 생산과 발전 과정에서 부산물이 거의 없고, 연료전지 발전 뒤에도 물만 남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어느 한쪽을 완전한 시스템이라 할 순 없다"며 "ESS와 수소 각각의 장단점을 실제 주거 환경에서 검증하며 장단점을 실증하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삼척시는 이 시설을 앞으로 더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삼척시 관계자는 "앞으로 수소타운하우스 내 수소연료전지 확대 구축과 삼척시 관내 수소산업시설 통합안전관리센터로 확대해 운영할 계획"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