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총파업을 앞두고 회사 안팎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사장단은 물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직접 노조 사무실을 찾아 대화 재개를 요청했지만, 노조는 핵심 요구안과 대표교섭위원 교체를 요구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유지했다. 노사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내부 신뢰 붕괴와 조직 균열, 산업 경쟁력 훼손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을 비롯한 사장단은 15일 오후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내 노조 사무실을 방문해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 등과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전 부회장은 "노조와 열린 자세로 대화하겠다"며 교섭을 이어가자는 뜻을 전달했다. 사장단은 "파업은 노사 모두가 지는 것이니, 절박한 마음에 찾아왔다"며 "파업까지 가기 전에 대화를 재개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사장단이 직접 노조 사무실을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경영진이 책임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통해 사태 해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전 부회장 등 사장단 18명은 공동 사과문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파업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노조를 향해 "한 가족이자 운명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조건 없이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오전 회사 측도 노조에 공문을 보내 조건 없는 대화 재개를 거듭 요청했다.
사장단은 대국민 사과도 진행했다. 사장단은 "노사 문제로 국민들과 주주, 그리고 정부에 큰 부담과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성취가 커질수록 우리 사회가 삼성에 거는 기대가 더 엄격하고 더 커지는데 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며 사과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영훈 장관도 이날 오후 노조 사무실을 전격 방문해 최 위원장과 면담했다. 임금협상 관련 주요 현안과 향후 노조 대응 방향 등을 논의하며 대화 재개를 요청했다. 김 장관은 주말에 사측을 만나 양측의 의견을 좁혀갈 계획이다.
하지만 노조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 노조 측은 전 부회장과 면담에서도 "직원들이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다"며 "성과급 투명화, 상한폐지, 제도화 안건이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최 위원장은 김 장관과의 면담 자리에서도 "초기업 노조는 교섭 재개를 위해 사측 대표교섭위원을 교체할 것, 사측의 실질적인 입장 변화가 선행될 것을 요청드렸다"며 "교섭이 재개된다면, 책임 있는 자세로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측 공문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보낸 공문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며 "6월 7일 이후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노조는 오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노사 갈등은 직원 간 갈등으로도 번지고 있다. 이미 DS·DX부문 간 갈등과 노조 간 균열, 임원에 대한 막말과 인신공격 등으로 내부 신뢰가 크게 훼손된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노사 협상 과정에서 소외됐다는 불만을 제기해온 DX(디바이스경험)부문 소속 조합원들은 현재 DS 중심으로 교섭을 진행 중인 초기업노조의 대표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법적 대응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업노조를 상대로 임금협상 체결 및 파업 금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하는 방안이다.
사장단의 이번 사과는 단순한 사태 수습 차원을 넘어, 장기적 관점에서 노사 신뢰를 복원하고 조직문화를 재건하기 위한 결단으로 평가된다. 향후 성과급 갈등이 마무리되더라도 훼손된 내부 분위기와 조직 문화는 큰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일부에서는 강제조정 절차인 긴급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단순한 임금 갈등을 넘어 반도체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긴급조정이 시행되면 노조는 쟁의를 중단해야 하고 30일 동안 쟁의를 재개할 수 없다. 다만 긴급조정권 발동은 정부와 기업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사장단 사과, 대표이사 노조 사무실 방문, 공문 발송 등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손을 내밀고 있는 만큼 이제는 노조가 응답해야 할 차례"라며 "노조 지도부가 대화를 거부한다면 조합원들의 뜻은 물론 국민적 신뢰까지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