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녀온 전세계 전력·차량용 반도체 1위 기업 인피니온 테크놀로지스의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 사업장. 약 30만㎡(약 9만 평) 규모의 거대한 단지 안 '마인홀트슈트라세 2번지' 주소가 적힌 사무동에 들어서자, 임직원들의 발길이 빈번하게 오가는 내부 전광판에 한 문구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탈탄소화와 디지털화를 함께 주도한다(Driving decarbonization and digitalization. Together.)'
일상 공간에서부터 전사적으로 강조되는 이 메시지는 탈탄소화가 단순한 선언적 구호가 아닌 인피니온의 경영 전략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에너지를 대량 소비하는 반도체 제조업이 전면에 탈탄소화를 핵심 목표로 내세운 것이다. 유럽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복합단지) 실리콘 작센의 중심에서 실현되고 있는 제조업 녹색전환(GX)의 단면이다.
지난달 21일 인피니온 드레스덴 사무동에서 만난 팔코 횐스도르프 인피니온 드레스덴 기술 부문 부사장은 "인피니온이 추구하는 두 가지 주요 기업 비전은 탈탄소화와 디지털화"라고 재확인했다. 탈탄소화를 바라보는 기업의 시각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동시에 탈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기업에 실익을 안겨주는 전략이라는 현실도 명확히했다.
횐스도르프 부사장은 "20세기 산업은 석유·가스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과 분쟁에 의해 형성됐다"며 "21세기에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이 기업·국가의 회복탄력성과 주권을 지키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태양과 바람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자원"이라며 "이제 과제는 (에너지에 대한) 접근성이 아니라, 이(태양과 바람 에너지)를 수확하는데 투자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강조했다.
비용적 관점에서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가능한 선택지가 됐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횐스도르프 부사장은 "오늘날 재생에너지와 기존 에너지 사이의 상충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지속가능성은 경제적으로 실행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같은 전사적 목표는 수치로 입증됐다. 인피니온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회계연도(2024년 10월~2025년 9월) 총 에너지 소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89%다. 스코프2(전력·스팀 등의 사용으로 인한 간접 배출량) 온실가스 배출량(시장 기반)이 2025년 1만0345 tCO2e로, 기준연도(2019년) 보다 98.8% 급감했는데, 이 원인이 바로 전력을 대부분 재생에너지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기준연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00으로 뒀을 때 72만큼의 감축이 재생에너지 전환으로 달성한 것이다.
전력 분야 탈탄소에 진전을 이룬 인피니온은 생산시설의 공정연료도 탈탄소로 전환을 추진 중이다. 드레스덴 부지 내에서 기존부터 가동 중인 기존 공장(모듈 1~3) 지붕의 천연가스 버너 시스템을 향후 2~3년 내에 전면 전기화 기기로 교체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드레스덴 생산 기지 전체에서 가스 사용량을 줄인다.
드레스덴 부지에 총 50억 유로(약 7조4000억원)를 투입해 건설 중인 신규 공장 '모듈 4(스마트 파워 팹)'의 경우 최고 등급의 친환경 건축물 인증인 '친환경 건축물 인증(LEED) 인증'을 목표로 설계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강조했다. 그는 "인피니온에게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것은 환경적 필수 요건이자 사업의 필수 과제"라며 "시스템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임으로써 탄소 발자국과 운영 비용을 동시에 낮출 수 있다"고 자신했다.
같은 현장에서 만난 안드레 타우버 인피니온 전략·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총괄 역시 탈탄소화가 기업의 자발적 미션을 넘어 경영 전략의 일환이란 점을 주목했다. 그는 "탈탄소화는 단순한 사명이 아니라 사업모델의 핵심 요소"라며 "우리는 업계의 '퍼스트 무버'로서 제품 탄소 발자국(PCF) 데이터를 고객사에게 투명하게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 등 인피니온의 대형 고객사들이 자사 제품의 친환경성을 시장에 홍보하고, 자체 공급망 내 배출량(Scope 3)을 감축해야 하는 요구를 관통한다. 인피니온이 공급망 전 단계에서 녹색 전력을 우선 조달하고 최고 수준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투명성을 보여줄 때 비용에서 현격한 차이가 없다면 고객사들은 인피니온의 칩을 선택하게 된다.
과거에는 환경 투자가 단기적인 비용 상승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의 산업 구조에서는 선제적인 탈탄소화가 곧 중장기적 원가 절감과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우위를 갖는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인피니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제 공정 효율화로 에너지 총소비량이 줄어들면 탄소 발자국이 감소되고 기업의 운영비용(OpEx) 역시 구조적으로 떨어진다. 이는 기업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와 사업성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횐스도르프 부사장은 "우리에게는 미래 세대가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 '분기별 실적' 이상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