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가 촉발한 전력 수요 증가는 재생에너지에 수조 달러 규모의 투자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미래에셋센터원빌딩에서 만난 메리골드 룩 IFM 인베스터스(IFM Investors) 인프라 부문 전무는 에너지 전환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호주계 글로벌 인프라 투자사 IFM에서 저탄소 인프라 투자를 총괄하는 그는 AI(인공지능) 확산과 데이터센터 증가가 가져올 거대한 변화를 "전력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IFM은 2180억 호주달러(약 201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인프라 투자사 중 하나다.
그는 향후 수십 년간 인프라 시장을 움직일 핵심 동력으로 '3D'를 제시했다. 탈탄소화(Decarbonisation), 탈세계화(Deglobalisation), 디지털화(Digitalisation)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감축 수요는 여전히 유효하고(탈탄소화), 지정학적 갈등 속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탈세계화). 여기에 AI와 전동화가 촉발한 전력 수요 증가가 새로운 투자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설명이다(디지털화).
룩 전무는 "전력 수요가 지금과는 한 차원 다른 수준으로 증가하고 이 수요가 재생에너지 관련 자산과 인프라 투자 수요를 뒷받침할 것"이라며 "전력망, 전기차 충전 인프라, 재생천연가스(RNG), 탄소포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AI가 불러온 데이터센터 확산은 전력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수십 년 동안 정체됐던 전력 수요가 최근 연간 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2030년까지 미국에서 데이터센터 증가로 필요한 추가 전력 규모만 현재 이탈리아 전체 전력 소비량 수준에 달한다"고 했다.
그가 재생에너지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룩 전무는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빠르게 확보할 수 있으면서도 비용 경쟁력이 높은 전력을 원한다"며 "태양광과 풍력은 설치 후 발전까지 1~2년이면 가능하지만 가스발전소는 5~10년이 걸린다"고 했다. 이어 "(빅테크 입장에서는) 발전 시설에 투자하는 것이 AI 성장의 수혜를 누리면서도 상대적으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역시 에너지 전환과 전력 인프라 투자 측면에서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고 봤다. 룩 전무는 "한국은 제조업 기반이 강하고 산업계의 청정 전력 수요도 크다"며 "정부의 정책 지원과 재생에너지 장기 구매계약(PPA) 수요, 우수한 EPC(설계·조달·시공) 역량도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한국에 당장 투자해야 한다면 태양광을 첫손에 꼽는다"며 "한국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성숙한 재생에너지는 태양광"이라고 했다. 이어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 부지가 부족한 대신 지붕형 분산 태양광 분야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다"며 "안정적이고 계약 기반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 투자처로는 배터리를 지목했다.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불가피한 전력 간헐성과 계통 안정성 문제를 해결할 핵심 기술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현재 전 세계 전력망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부하를 감당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배터리는 계통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한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수준의 배터리 제조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소와 해상풍력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해상풍력은 장기적으로 관심 있게 보고 있지만 아직 핵심 인프라 투자 대상으로 보기에는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크고 초기 단계"라며 "수소도 기술 성숙도와 상업 시장 형성 측면에서 아직 IFM이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장기 구매계약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장이 형성돼야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룩 전무는 최근 이란·이스라엘 충돌 등 중동 정세 불안이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고 봤다. 그는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에너지 공급망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측면에서도 재생에너지 투자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했다.
룩 전무는 또 "에너지 전환이 성공하려면 정부와 기업, 투자자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에너지 전환의 규모는 매우 크고 이를 현실화하려면 세 주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