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수요에 대응하기엔 부족하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인공지능) 반도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총 3200조원 규모의 투자에 나선다. 수도권 생산거점 구축일정을 앞당기고 호남에 신규 생산기지를 조성한다. 폭증하는 AI 메모리반도체(이하 메모리) 수요를 선점하고 글로벌 경쟁우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29일 반도체 시설투자에 2040년까지 약 21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역별로 △평택·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1650조원 △광주 신규 반도체 팹(공장) 건설에 400조원 △천안·온양 HBM(고대역폭메모리) 팹에 56조원 등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AI로 기술 패러다임이 상상하지 못할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며 "여러 지역 중 전력·용수·인력 확보 그리고 여러 인프라 등 많은 인센티브 지원이 기대되는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600조원 △청주 생산기지의 첨단패키징 역량강화 등에 100조원 △새로운 서남권 클러스터에 400조원 등 총 1100조원을 단계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미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극심한 공급부족이고 부족상태는 더 심해질 것"이라며 "메모리 공급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 저희는 새로운 생산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에 투입하는 규모만 3200조원에 달한다. 투자를 통해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의 메모리 생산라인 건설을 기존 계획보다 3~4년 당기고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완공을 2047년에서 2040년으로 앞당길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완공을 2045년에서 12년 단축할 예정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내년 글로벌 메모리시장 규모는 7480억달러(약 1154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2023년 920억달러와 비교하면 4년 새 8배 이상 성장하는 규모다. HBM시장만 86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폭발적인 시장성장의 배경에는 AI가 있다. 메모리산업은 그동안 PC와 모바일 중심의 수요에 따라 2~3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2022년 생성형 AI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메모리 수요구조는 AI 중심으로 재편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 역시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산업구조 자체의 변화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압도적인 생산물량으로 추격자의 도전을 뿌리쳐야 한다는 생존본능도 담겼다.
AI 인프라가 확대되면서 초기에는 HBM에 집중되던 수요가 LPDDR(저전력 D램), GDDR(그래픽 D램), 고용량 eSSD(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등 메모리 전반으로 확산한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전체 D램 출하량의 57%가 데이터센터로 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모리 수요의 중심이 AI 인프라로 이동했다는 의미다.
특히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계획은 시장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이들은 수년 단위의 투자계획을 제시하는 동시에 HBM 등 AI 메모리에 대한 LTA(장기공급계약)를 확대한다.
3~5년 단위의 장기계약이 늘면서 메모리업체들도 중장기 수요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반면 적기에 생산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부담도 함께 커졌다.
아울러 HBM은 동일한 생산량을 기준으로도 표준 D램보다 전공정에서 훨씬 많은 웨이퍼 투입이 필요하다. 여기에 후공정에서는 첨단패키징 공정이 추가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공정과 후공정 투자를 동시에 확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