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가 재생에너지 100GW(기가와트) 시대에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전력망 안정과 에너지 안보를 떠받칠 '필수 전략자산'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태양광·풍력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동시에 남는 전력을 장기간 저장·운송해 송전망 부담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수소의 경제성도 송전망 투자 부담을 줄이고 남는 전력을 장기간 저장하는 등 전력 시스템 전체에서 얻는 효과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3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환경경제학회와 한국공학한림원이 공동 주최한 '재생에너지 도약을 위한 수소 섹터커플링 정책포럼'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재생에너지 100GW 시대에 수소는 더 이상 선택 가능한 보완재가 아니라 반드시 갖춰야 할 전략 자산"이라며 "에너지 안보와 전력계통 안정, 시스템 차원의 경제성, 정책 통합 등 네 가지 측면에서 수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발전량 변동성과 전력망 운영 부담도 커지는게 현실이다. 낮에 태양광으로 전기가 남아도 이를 수도권의 반도체 공장이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로 보낼 송전망이 부족하면 출력을 제한해야 한다. 배터리 기반 전기저장장치(ESS) 역시 계절별로 편중된 잉여 전력을 수개월 동안 대규모로 저장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유 교수는 수소를 이같은 병목을 풀 핵심 수단으로 꼽았다. 남는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들어두면, 실시간 수급을 맞춰야 하는 전기와 달리 압축·액화하거나 암모니아로 바꿔 장기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전력이 필요한 지역으로 언제든 운송할 수도 있다. 배터리가 단시간 수급을 맡는다면 계절을 넘나드는 장기·대규모 저장과 지역 간 에너지 이동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유 교수는 또 수소의 경제성도 생산비나 발전단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개별 발전원으로만 보면 비싸 보이지만 장기 저장과 예비력 확보, 출력 제한 감소, 송전망 투자 절감까지 포함하면 시스템 전체 비용을 얼마나 낮추는지가 달라져서다.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는 수소가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고도 했다. 국내 재생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데다 해외 청정수소를 도입할 경우에도 조달 국가와 운송 방식을 다변화할 수 있어 공급망 충격에 대응하는 '에너지 안전판'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수송 부문에서 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버스와 대형트럭 등 상용차의 수소연료전지차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기 승용차 중심의 전환만으로는 충전 인프라와 전력계통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장거리 운행이 많은 상용차 운행 특성을 고려해 수소차를 병행하는 한국형 전환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유 교수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수소차를 폄하하는 근거는 미국의 넉넉한 전력계통을 전제로 한 것이지 계통 제약이 큰 한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뒤 "상용차는 운행 거리가 길고 노선이 일정해 수요 예측과 거점형 충전소 운영이 쉽다"면서 "버스나 대형 트럭만이라도 50% 이상 수소차 의무화를 목표로 차량 보급과 충전 인프라를 연계한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도 수소가 전력과 수송, 산업 부문을 연결하는 에너지전환 수단으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문일 연세대 교수는 "대규모 전력 수요가 예상되는 메가프로젝트의 추진 시급성을 고려할 때 수소연료전지 발전은 비교적 짧은 구축 기간과 다양한 에너지원 활용 측면에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강병욱 에너지경제연구원 수소경제연구단장은 "수소차가 그간 전기차보다 비효율적인 대안으로 다뤄졌지만 전력계통 투자 절감과 충전 수요 분산에 따른 편익까지 고려하면 정책적 타당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