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를 살까 고민하다 결국 하이브리드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기차의 정숙성과 경제성은 마음에 들지만 아파트 충전환경이 불안하고, 명절이나 휴가철 장거리 이동도 걱정된다. 전기차로 넘어가고 싶지만 아직 한 번에 건너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다. 이들에게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는 후퇴일까, 아니면 전환을 위한 징검다리일까.
나는 PHEV가 충분히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소비자가 같은 주거환경과 이동패턴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집이나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충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순수전기차는 이미 훌륭한 선택이다. 그러나 오래된 공동주택에 살거나 장거리 운행이 잦은 사람에게는 전환의 문턱이 여전히 높다.
이들에게 당장 강을 한 번에 건너라고 요구하기보다, 일상의 상당 부분은 전기로 달리고 필요한 순간에는 엔진의 도움을 받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전환은 완벽한 사람들끼리 벌이는 경주가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이 각자의 조건에서 다음 단계로 움직이도록 돕는 과정이다.
돌아보면 한국은 전환의 속도를 높이려다 중간 계단을 너무 일찍 없앤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21년 PHEV 구매보조금이 폐지됐고, 비슷한 시기 국내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국산 PHEV도 사실상 사라졌다. 순수전기차에 지원과 역량을 집중하는 사이, 곧바로 전기차를 선택하기 어려운 다수의 소비자가 밟고 올라설 발판은 비어버렸다. 이후 일반 하이브리드가 크게 성장한 것은 사람들이 전환을 거부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다음 단계를 찾아 움직인 결과로도 읽을 수 있다.
다만 PHEV가 징검다리가 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이 있다. PHEV의 'P'는 장식이 아니다. 플러그를 꽂고 충전해야 비로소 존재 이유가 생긴다. 충전하지 않는 PHEV는 무거운 하이브리드차에 머물고, 연료 절감과 탄소 감축이라는 장점도 줄어든다.
충전구역을 이용할 때는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최근 순수전기차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내연기관차보다 PHEV 차주를 향한 불만이 더 크게 표출되기도 한다. 비교적 작은 배터리의 충전이 끝났는데도 차량을 오랫동안 옮기지 않아, 충전이 절실한 전기차의 자리를 막는 사례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PHEV도 전기로 달리는 차량이므로 충전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충전이 끝난 뒤에도 충전구역을 계속 차지할 권리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배터리가 작은 만큼 충전 완료를 확인하고 더 빠르게 자리를 비워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징검다리는 한 사람이 오래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다음 사람도 계속 건널 수 있어야 한다.
충전 인프라와 제도도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 순수전기차 등록대수만으로 충전 수요를 계산해서는 부족하다. PHEV와 앞으로 등장할 주행거리연장형 전기차도 같은 공간을 사용한다. 차량별 충전 특성을 고려해 완료 알림과 점유 기준을 세분화하고, 충전이 끝난 뒤 자연스럽게 이동하도록 운영방식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용자에게도 새로운 전기차 생활문해력이 필요하다. 평소에는 꾸준히 충전해 가능한 만큼 전기로 달리고, 충전이 끝나면 다음 이용자를 위해 자리를 비워야 한다. 엔진을 장거리 이동의 안전망으로 활용하되, 그것을 충전하지 않을 이유나 충전구역을 오래 차지할 명분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PHEV는 그 자체로 후퇴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내연기관 시대에 머무는 핑계가 되기도 하고, 전기차생활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완벽한 전환만 기다리며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보다, 오늘 가능한 만큼 전기로 달리는 사람이 늘어나는 편이 낫다. 그러나 징검다리를 선택한 사람에게는 그 다리를 제대로 건널 책임도 있다.
충전하며 타고, 충전이 끝나면 비워주는 것. 그 작은 실천이 PHEV를 후퇴가 아니라 전기차생활을 향한 한 걸음으로 만든다. 글/조현민 이볼루션 대표
조현민
전기차 생활문화 기획자
㈜이볼루션 대표
『제4의 공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