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전략적 투자 합의는 우리가 익숙한 해외직접투자와 성격이 다르다. 총 3500억 달러 가운데 2000억 달러는 미국이 선정하는 전략산업 프로젝트에 한국이 자금을 공급하고, 1500억 달러는 조선 분야의 직접투자·보증·선박금융 등이다. 2000억 달러는 연간 200억 달러 한도에서 집행되며 미국 대통령이 최종 사업을 선정한다. 배분 가능한 현금은 한국이 원리금을 회수하기 전까지 한미가 절반씩, 이후에는 한국 10%, 미국 90%로 나눈다. 사업 위험을 부담하지만 수익 배분은 제한되는 이례적인 구조다. 대신 미국은 가능한 경우 한국 기업을 공급업체로 우선 고려하고, 토지·전력·용수와 인허가에도 협조하기로 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개인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2025년 포천 500대 기업 가운데 109곳이 해외 출생 1세대 이민자가 세운 회사다. 미국은 외국 기업에도 기회의 땅이었다. 소니는 미국 시장을 발판으로 세계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업은 미국에서 사업을 키워도 본사가 지분과 핵심기술을 보유하면 성과를 배당과 수출, 기술·서비스 수입으로 본국에 돌려보낼 수 있다.
그렇다면 대미투자에서도 '미국 적합도'가 높은 산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력은 세계 수준이지만 국내시장이 작고, 미국에서는 수요가 빠르게 늘며, 핵심기술과 부가가치를 국내에 남길 수 있는 산업이다. 대표적인 예로 전력 분야를 들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미국의 전력설비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한국은 원전, 발전용 가스터빈, 발전플랜트 EPC(설계·조달·시공), 변압기와 전력기기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특히 가스터빈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2025년 미국의 대형 가스터빈 주문은 51GW(기가와트)로 2000년 이후 최고 수준이었고, 세계 수요도 100GW를 넘어섰다. 두산에너빌리티도 3월까지 국내외에서 380MW(메가와트)급 가스터빈 23기를 수주했다. 미국은 부족한 공급능력을 보완하고, 한국은 세계 최대 발전시장에서 사업을 넓힐 수 있다. 발전기·HRSG(배열회수보일러)·변압기·제어시스템·소재·부품과 장기 정비시장도 함께 열린다. 첫 사업에서 형성된 조달구조와 공급망, 사업 실적이 후속 미국 사업과 제3국 수주로 이어진다면 산업적 효과는 한층 커질 것이다.
사업 선정 과정에서 상업적 합리성과 함께 한국 기업의 수주·수출, 중견·중소기업의 미국 공급망 진입, 장기 서비스와 후속 수주, 국내 R&D(연구개발)와 고부가가치 생산에 미치는 효과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확보한 시장이 국내 기술개발과 생산으로 이어질수록 투자 효과도 커진다.
이번 대규모 대미투자는 백악관 주도 아래 관세정책과 맞물려 추진된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불가피하게 추진되는 만큼, 미국이 개인에게 기회의 땅이었던 것처럼 한국 기업에도 새로운 성장의 무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미국에서 얻은 시장과 성과가 다시 한국 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져, 이번 대미투자가 부담을 넘어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