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약 '미프진' 도입](종합)

정부가 내년 1분기에 먹는 임신중지 약물인 '미프진' 정식 도입을 추진한다. 허용 주수는 임신 9주 이내로, 의사의 처방에 따라 병원에서 미프진을 복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성평등가족부는 16일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와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보고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이 임신중지 약물 국내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도입되는 약물은 임신중지 약물로 널리 알려진 미프진으로, 도입 시기는 내년 1분기로 검토 중이다.
미프진 도입이 결정된 건 낙태죄 위헌이 결정난 지 7년 만이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일 형법상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쟁점 중 하나였던 허용 주수는 임신 63일(9주 미만) 이내로 결정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임신 12주 미만 여성에게 미프진을 통한 임신중지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안내하지만 식약처는 임상시험 자료 등을 근거로 허용 주수를 보수적으로 정했다.
도입 초기 2년 동안은 병원에 직접 방문해 의사가 처방·조제한 약물을 복용하는 방식으로 임신중지 과정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임신중지를 시도할 때는 보통 1약(미페프리스톤)과 2약(미소프로스톨)을 복용해야 하는데, 정부는 우선 허가사항에 따라 병원에서 1약을 복용한 뒤 24~48시간 후 2약을 복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후 7~14일 이내에 병원을 방문해 임신중지 결과를 확인하도록 한다.
의사에게만 처방·조제 자격을 부여한 이유는 형법과 모자보건법이 아직 개정되지 않아 약사가 처벌될 가능성이 남아 있어서다. 다만 2년간 법 개정을 추진해 점진적으로 접근성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미성년자에게 보호자 동의 없이 처방·복용을 허용할지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미성년자가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가이드라인에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임신중지약물을 정식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임신중지는 여전히 '불법이지만 불법이 아닌' 모호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임신중지약물이 내년 1분기 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는 올 하반기에 국회에서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6일 국회에는 보건복지위 소관인 '모자보건법'의 임신중지와 관련한 개정안이 5건 올라와 있다.
임신중지약물이 도입되더라도 모자보건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낙태'의 옛 기준은 살아있다. 모자보건법에는 임신 24주 이내, 장애 등 특정 사유에 한해서만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본인, 의사에게는 효력이 없지만, 약사는 여전히 처벌 가능하다. 정부가 도입 2년간 간 의료기관 내 의사의 직접 처방·조제 원칙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독자들의 PICK!
개정안은 대부분 임신중지와 관련한 지역 상담기관을 만들고 수술에 의한 방법뿐 아니라 약물 투여도 허용한다는 내용이지만 방식과 허용한계에 대해 이견이 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손솔 진보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임신중지 허용 한계 조항을 전면 삭제한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기존 사유를 폐지하되 의사와의 상담을 필수로 변경한다.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안은 기존 24주에서 22주로 단축하고 '태아'를 독립적인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또 3명의 의원은 임신중지의 건강보험 급여화를 요구하는 반면 박 의원과 조 의원은 언급이 없다. 조 의원은 모자보건법에 인공임신중절수술 기관을 미리 지정하고 의사의 수술 거부권을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복지위 밖에서도 논란은 계속된다. 윤용근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미프진 도입과 관련해 "마약도 국민들이 한다고 해서 허용할거냐"고 발언했다가 여성계가 "저열한 인권·성인지 감수성에 경악한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현 정부는 공식적으로 임신중지와 관련한 특정 기준을 제안한 바 없다. 2020년에는 14주까지는 본인 결정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정부안을 냈다가 여성계와 종교계 모두에 반발을 샀다. 하지만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서 만 15~49세 성경험 여성 7022명 중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은 8.6%(606명)이고 이중 절반이 미혼 상태라 임신중지 허용 요구는 지속돼 왔다. 약물을 사용한 경우는 평균 6.11주, 수술을 한 경우는 평균 6.74주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임신중지약물을 정식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해당 제약사가 신청한 기간(임신 9주 이내)이 모자보건법 개정과 관련해 특별히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올 하반기에 국회에서 논의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논의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급여 여부에 대해서도 "해당 제약사가 신청해야 한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와 별개로 사전 초음파 검사 등은 급여 검토를 한다.
임신중지약물 처방은 산부인과 전문의만 가능한지, 일반의도 가능하지에 대해서도 복지부는 "자격 뿐만 아니라 자궁외임신 여부, 다른 약물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유가 있는 지 등을 판단하는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의료계와 계속 협의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법적 공백이 지속되는 동안 현실에서는 기이한 법적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2024년 유튜버 A씨는 임신 36주 차에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과정을 인터넷에 올렸다. 당시 경찰은 낙태죄로 A씨와 의사를 처벌할 수 없어 살인죄를 적용했다. 이마저도 시술을 진행하다가 태아가 살아있는 상태로 배출될 경우에만 살인죄가 적용 가능해 태아가 뱃속에서 사산된 상태인지, 모체와 분리했을 때 생존 가능한 주수인지 등이 논점이 됐다.
1심에서는 살인죄를 인정했지만 지난 7월 2심에서 A씨는 무죄를 받았다. 병원장 B씨에게는 징역 4년에 벌금 150만원을 선고하고 900만원을 추징했다. 집도의 C씨에게는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 만에 정부가 임신중지약물인 '미프진' 정식 도입을 추진한다.
미프진은 본래 프랑스 제약사가 개발한 미페프리스톤을 유효성분으로 하는 경구용 임신중지 의약품의 상품명이다. 1988년 프랑스에서 처음 허가 된 이후 오랜 시간 사용되면서 먹는 임신중지약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될 제품명은 현대약품이 수입하는 '미프지미소'다.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이 개발했다. 미프지미소는 미페프리스톤 200mg 1정과 미소프로스톨 200㎍ 4정을 순차 투여하는 패키지 제품이다. 통상 미페프리스톤 투여 1~2일 이후 미소프로스톨을 투약한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유지에 필수적인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의 작동을 차단해 자궁내막 탈락을 유도, 임신을 종료시키는 약물이다. 미소프로스톨은 위궤양 치료약으로 개발된 약물로, 자궁의 수축과 자궁 경부의 이완을 유도해 분만 유도와 산후 출혈 예방·치료에 사용된다.
미소프로스톨만 복용 시 임신 초기(12주까지) 임신중지 성공률이 80~85%이지만 두 약을 함께 복용 시 약 95%로 올라간다.
현대약품은 2024년 12월 식약처에 세번째 품목허가를 신청하면서 해외 임상시험 결과도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임신 9주 이하에서 94.9~97.3%의 임신중절 성공률을 기록했다.
미소프로스톨은 위궤양 치료제로 이미 국내 식약처 허가를 받은 전문의약품이다. 미페프리스톤은 미허가 상태지만 여성계에서는 "비아시아국가에서 아시아인종을 포함해 미소프로스톨-미페스리스톤 콤비팩에 대한 유효성, 안전성 연구를 진행했으며 인종별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며 "한국 인구에 별도의 가교시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신중지 의약품은 지난해 기준 약 100개국에서 허용된 상태다.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스페인, 스위스 등은 1990년대에, 미국과 대만은 2000년, 호주는 2012년, 캐나다는 2015년, 일본은 2023년에 허용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미페프리스톤을 2005년부터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했고, 2019년부터는 핵심 목록으로 격상했다.
국가에 따라 의사 처방을 받고 약국 또는 보건소에서 수령하는 방법, 비대면 진료를 받고 우편으로 배송을 받는 방법 등으로 전달된다. 영국, 프랑스 등은 국민건강보험을 적용받아 비용이 무료다.

정부가 경구용 임신 중지 약물 '미프진'(성분명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을 국내에 정식 도입키로 한 가운데, 의료계는 의사의 양심적 처방 거부권과 미성년자 처방 기준 마련 등 제도적 공백 보완이 우선이란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도입 추진을 강하게 반발해 온 의료계는 이번 정부안에 대해서도 환자와 의료인의 보호 장치를 위한 제도가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의료계는 이미 장기간 지연된 법제화 과정을 사실상 건너뛴 채 정부가 '선(先) 도입 후(後) 논의' 수순을 밟고 있단 점을 문제 삼는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16일 입장문에서 "본회는 (미프진)도입 자체를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서도 "환자 안전과 의료인의 법적 보호를 담보하지 않는 어떠한 도입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에 따른 명확한 임신 중지 관련 규율 △임신 중지 의약품의 허가·처방·조제·투약·부작용 보고에 이르는 제도적 근거 △불완전 유산·과다출혈에 대비한 후속 수술적 처치와 응급 이송 의료기관 요건 △양심적 임신 중지약 처방을 거부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보호 방안 등의 마련을 요구했다.
특히 산부인과 의사들은 처방 과정에서 의학적 사유가 아닌 사회·경제적 문제 등 환자의 비의학적인 사유로 약을 처방할 경우, 처방 의사가 형사 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최안나 강릉의료원장은 "임신 지속 시 임신부의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는 등 의학적 사유가 있다면 의사들이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아 (임신 중지를)할 수 있지만, 의학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낙태를 원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경제적 상황 등 비의학적 사유에 의한 낙태의 시술 책임을 의사들에게 넘기는 건 매우 무책임하다.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 기준은 국가가 책임지고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안전한 원내 투약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산부인과 전문의 중심의 처방 체계, 등록 의료기관 중심의 폐쇄형 공급망, 초음파로 확인한 임신 주수 원칙과 자궁외임신 배제, 지역 응급의료기관과의 사전 연계와 신속한 전원체계부터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