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찰보리, 일단 먹어방 고릅써."(일단 드셔보시고 얘기하세요.)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마라도를 가기 전, 제주도와 마라도 사이에 섬 하나가 있다. 약 200명 내외 인구가 살고 전체 면적이 0.84㎢에 불과한 작은 섬 '가파도'다.
가파도는 최근 수년간 푸른 보리밭이 가득한 '가파도 청보리 축제'로 SNS(사회연결망서비스)상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관광객이 급증했다. 최근 편의점, 카페 등이 생겨나 다른 일을 하는 이들도 조금씩 늘고 있지만, 본래 이 섬은 1800년대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모든 인구가 보리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던 섬이었다. 현재도 대부분의 주민이 보리농사를 짓고 있으며 섬 면적의 65%가 보리밭인 곳이다.
1일 오전 찾은 가파도에서는 노랗게 익은 찰보리 수확이 한창이었다. 찰보리는 12월 말 심어 5월 초중순 수확한다. 올해는 기후변화로 수확이 다소 늦어졌다. 찰보리를 수확하던 가파도 보리 농부 김동옥씨는 "가파도 찰보리는 여타 육지에서 나는 보리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며 "일단 먹어보면 그 차이를 금세 알 수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가파도 주민들이 '가파도 보리'에 자부심이 큰 건 보리가 곧 가파도 사람들에게 삶이자 추억이어서다. 가파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리 수확철 마다 학교에서 '보리 방학'이 시행됐던 곳이다. 보리를 키우는 일이 생계였기에, 수확철엔 모든 집안 구성원들이 보리 농사에 나서야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파도 보리는 내게 인생이고, 삶이고, 추억"이라며 "나 뿐만 아니라 모든 가파도 주민에게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리 농사로는 큰 돈을 벌 수 없는데도 지금까지 가파도 주민들이 보리 농사를 이어오는 이유다.
가파도 주민들이 가파도 보리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건 단순히 추억 때문은 아니다. 김씨는 "자연 해풍과 뜨거운 햇살을 맞고 자란 가파도 보리는 탱글탱글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강하다"며 "각종 미네랄이나, 두뇌 대사촉진과 기억력 향상 등에 좋다는 가바(GABA·감마아미노부티르산) 성분 함량이 타 보리에 비해 수 배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가파도 보리는 '친환경 무농약'이다"라고 강조했다.
가파도는 최고단이 20m에 불과할 정도로 높은 지형이 없는 데다가, 섬이 작아 섬 중심부에 위치한 보리밭까지 해수(바닷물방울)와 해풍이 강하게 들이닥친다. 해수가 병충해를 예방하기 때문에 농약을 뿌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특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동안 가파도 보리 농가들은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판매처를 찾기 어려워서다. 김씨는 "가파도 보리는 물류 비용 등 때문에 육지 보리에 비해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조금 밀리고, 최근 수년간 국내 맥주회사들이 국내산 보리 대신 가격이 더 저렴한 체코 등 유럽산 보리를 사용하면서 보리공급이 과잉돼 판매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2018년쯤부터 가파도 보리 판로 찾기가 차츰 어려워졌고, 지난해는 아예 전량 판매를 못할 위기에 처했다. 김씨는 "이때 농협중앙회를 통해 소식을 들은 진생영농조합법인과 홈플러스가 나서주면서 가파도 보리 판매길이 열렸다"고 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가파도 찰보리 판매에 나선 데 이어 올해도 가파도에서 생산된 찰보리 140t(톤) 전량을 매입해 판매하기로 했다. 가파도 농가와의 '상생' 차원이다.
가파도 찰보리를 유통하는 진생영농조합법인의 이명훈 대표는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올레길과 청보리 축제 등으로 가파도 자체의 브랜드 파워가 커지는 요즘, 가파도 찰보리 인기는 점차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들이 소화가 잘되고 건강에도 좋은 가파도 찰보리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지난해 홈플러스에서 판매한 가파도 찰보리는 완판됐다"며 "오는 6월 중순부터 올해 생산분의 가파도 찰보리를 각 점포에서 판매하는데, 올해도 가파도 찰보리에 소비자들의 호응이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