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구찌가 샤넬이 못 되는 이유

오정은 기자
2021.11.24 06:30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은 신외감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한국 매출이 공개됐다. 이에 따라 루이비통은 지난해 1조원, 샤넬이 9000억원대, 에르메스는 4000억원대 매출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이탈리아 대표 명품 구찌의 매출에 대한 얘기는 없다. 구찌는 한국에서 얼마를 벌까.

외감법 개정으로 한국에서 유한회사는 올해부터 2020년 실적에 대한 재무제표를 공개하게 됐다. 하지만 구찌는 신외감법 시행에 앞서 유한회사 법인을 재빠르게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해 올해도 감사보고서 제출을 피했다. 패션업계에서는 구찌의 한국 매출이 샤넬에 필적한다고만 전해진다.

벤처기업 설립을 촉진하기 위해 2011년 도입된 유한책임회사는 매출 규모가 영세한 신생기업에 적합한 법인 형태로, 신외감법에서 예외다. 현행법상 유한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법인 변경은 금지돼 있다. 새로운 유한책임회사를 설립하고 기존 유한회사의 사업을 유한책임회사에 넘기거나 유한회사를 주식회사로 변경한 뒤 주식회사를 다시 유한책임회사로 변경해야 한다.

구찌는 한국 실적 공개를 피하기 위해 이 번거로운 절차를 감수하면서까지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다. 이에 명품 브랜드의 매출과 배당 현황 등이 줄줄이 공개되던 와중에도 나홀로 실적 공시를 피할 수 있었다.

샤넬과 에르메스, 루이비통도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한국의 매출, 영업이익, 배당 현황을 공개하고 싶진 않았겠지만 법 개정에 따라 재무제표를 공개했다. 샤넬 본사는 심지어 당해 한국실적을 부연 설명하는 자료까지 제출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명품 소비자들 사이에서 구찌는 일명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로 불리는 '3대 명품'에 끼지 못한다. '명품 중의 명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구찌는 당근마켓 등 중고시장에서 거래 가격이 급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고 시장에서 샤넬과 에르메스 제품은 백화점 정가보다 웃돈을 주고 사야한다. 루이비통도 가격이 크게 하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찌는 박스채 새상품이라도 30%는 싸게 내놔야 한다.

'명품의 자격'이란 무엇일까. 벤처기업에나 어울리는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해 재무제표 공개를 기피한 기회주의적인 모습은 확실히 명품의 품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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