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MZ 사로잡은 라네즈
# 프랑스 파리 1구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인 '웨스트필드 포럼 데 알'에 들어선 뷰티 편집숍 세포라. 에스티로더·클라랑스 등 글로벌 주요 화장품 브랜드가 자리잡은 매장 한켠엔 'UNIQUEMENT CHEZ SEPHORA(오직 세포라에서만 볼 수 있는)' 판넬이 붙은 '라네즈' 부스가 눈길을 끌었다.
라네즈는 이곳에 정식 부스 형태로 들어간 유일한 국내 브랜드다. 메인 부스 뒤편엔 간이 화장대를 연상케하는 라네즈의 팝업(임시) 부스도 설치돼있었다. 한국의 스킨케어 방식이 생소한 현지인들에게 사용법을 알려주는 공간이다. 부스 내 화장대 거울 앞엔 라네즈의 '클렌징 젤'을 비롯해 '스킨'과 '크림' 등 바르는 순서대로 제품이 놓여있었다.
친구에게 줄 생일 선물을 사러 라네즈 부스를 찾은 프랑스인 야스민(yasmine·26세)씨는 "친구가 라네즈의 립 제품을 선물해줘서 브랜드를 알게됐다"며 "품질이 좋다고 친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주변에서 많이 쓴다"고 말했다. 세포라 매장에 근무하는 라네즈 판매 직원 나자(najah)씨는 "부스를 찾은 고객 80%는 이미 라네즈를 알고 구매하러 오는 젊은 층"이라며 "립제품을 사러 왔다가 크림 등을 발라보면 텍스쳐(질감)에 만족해 여러개 사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라네즈는 현재 프랑스에 있는 세포라 전 매장에 입점해 영업 중이다.
이곳 말고도 파리 중심가에서 아모레퍼시픽의 제품은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웨스트필드에서 나와 거리를 걷다보면 화장품 편집숍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가 나오는데 '오마이크림(OH MY CREAM)'도 그중 하나다. 개개인의 피부 고민에 맞는 제품을 추천해주는 프랑스 현지 스킨케어 전문 편집숍이다. 한화로 29만원(180유로)인 고급 스킨케어 제품부터 현지 기능성 제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가게엔 지난 5월부터 '이니스프리'의 대표 제품도 판매되고 있다.
현장 직원인 이탈리아인 사브리나(sabrina·21세)씨는 "일부러 이니스프리 등 한국 제품을 사러 매장에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다"며 "이니스프리의 경우 반응이 좋아 일정 금액 이상 구매 고객에게 제품을 주는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프랑스에서도 한국산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생긴 결과다. 실제로 '오마이크림' 매출의 5%가 한국 브랜드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니스프리는 추가로 프랑스 현지 드러그스토어 입점을 추진 중이다.
영국에서도 라네즈는 K뷰티 인기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런던의 주요 쇼핑 명소인 '코벤트 가든' 인근에 위치한 대형 세포라 매장에서도 라네즈가 유일하게 별도 부스를 차렸다. 글로벌 화장품 유통사인 실리콘투가 운영하는 오프라인 편집숍 '모이다(MOIDA)'를 비롯해 '퓨어서울' 등 현지 K뷰티 편집숍에서도 코스알엑스(COSRX) 브랜드 등 아모레퍼시픽 대표 브랜드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화장품의 본고장인 프랑스는 아모레퍼시픽에 있어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곳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인 서성환 선대 회장은 1960년 7월 프랑스 땅을 밟았다. 당시 프랑스 화장품 기업인 '코티'의 초청을 받은게 계기가 됐다. 직항로가 개설돼있지 않았던 때라 서 회장은 일본과 홍콩 등을 경유하는 긴 여행 끝에 파리에 도착했고, 선진 시장을 둘러볼 기회를 갖게 됐다. 그로부터 30년 뒤인 1990년 아모레퍼시픽은 한국 기업으론 처음으로 프랑스 법인을 설립한다.
초기엔 '롤리타 렘피카' 등과 같은 향수를 팔았던 아모레퍼시픽은 2010년대 초반부터 핵심 경쟁력을 확보한 스킨케어를 중심으로 유럽 사업을 개편했다. 라네즈 브랜드가 선봉에 섰다. 프랑스어로 '눈(雪)'이란 의미를 지닌 '라네즈'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인기 브랜드로 올라섰다.
특히 매트한 립만 바르는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립글로즈를 유행시킨 대표 브랜드다. 주요 제품인 립글로이밤(튜브형 립밤)은 프랑스 1020세대들 사이에서 하나씩 가져야 하는 유행 아이템이 됐을 정도다. 입술에 바르는 즉시 각질을 잠재우고 촉촉하고 매끈하게 관리해 주는 데일리 립 케어 제품이란 현지 평가 덕분이다.
무엇보다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로 개발해 휴대성을 높인데다 망고·블루베리향 등 각각 대표향을 떠올리게하는 색상을 구현해 현지 젊은층을 중심으로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게 인기 요인으로 꼽혔다. 틱톡에선 각 색깔별 라네즈 립글로이밤 모서리에 구멍을 뚫어 키링으로 만드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유럽시장 성장세는 가파르다. 2022년 320억원이었던 EMEA(유럽·중동·아프리카) 매출은 2023년 518억원에서 지난해 1703억원으로 5배 이상 뛰었다. 기존 주력 시장이었던 중화권 외 시장으로의 매출을 넓히려는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리밸런싱(재구조화) 전략의 핵심 사업권이 된 것이다.
아울러 '이니스프리'와 '코스알엑스' 브랜드도 K뷰티 대표 주자로 사랑받고 있다. 이에 힘입어 최근엔 스킨케어 브랜드 '마몽드'가 북유럽 최대 뷰티 유통사인 '리코(Lyko)'와 손잡고 유럽 시장에 공식 진출했다. 이는 리코 채널 역사상 처음으로 8개국에 동시 론칭한 사례다. 인공지능(AI)기반의 뷰티 디바이스 전문 브랜드 메이크온도 유럽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준식 아모레퍼시픽 유럽 RHQ 법인장(상무)은 "유럽 시장에서 유럽 시장에서 프리미엄 스킨케어 카테고리에 집중하면서 뷰티 전 영역을 포괄하는 통합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신규 진출 브랜드들의 인지도를 확보하고 기존 브랜드의 고객 로열티를 강화하기 위해 브랜드 마케팅에 적극 투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준식 유럽 RHQ 법인장 인터뷰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지역별 매출 성장세가 가장 높았던 지역은 EMEA(유럽·중동·아프리카)다. 최근 2년새 3배 이상 매출이 급증했다. 영국 등 유럽에서 '라네즈' 등 주력 브랜드가 현지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면서 매출이 고성장한 영향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유럽 사업을 이끄는 이준식 유럽 RHQ 법인장(상무)(사진)은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난 자리에서 "현재 라네즈를 필두로 한 자사 스킨케어 브랜드들이 유럽 시장에서 자리잡으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한국 기업 중 가장 먼저 프랑스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면서 K뷰티 열풍을 준비해온 아모레퍼시픽의 성과는 최근 들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콧대높은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에서 국내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한 건 아모레퍼시픽 덕분이다. 이 법인장은 "과거엔 한국 화장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선 품질은 물론 가격 경쟁력과 혁신적인 제형과 성분 등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호평을 받고 있고, 연령대도 넓어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유럽 내 최고 인기 브랜드는 라네즈다. 지난 2분기 유럽 내 세포라(화장품 유통사)에서 전체 스킨케어 브랜드 중 3위에 올랐다. 영국에선 현지 편집숍인 '스페이스(Space) NK'에서 스킨케어 부문 3위, '부츠(Boots)'에선 10위권에 진입하는 등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 밤 사이 입술 각질을 녹여주는 '립 슬리핑 마스크'와 함께 립밤과 틴트, 립글로스 효과를 한 번에 주는 '글레이즈 크레이즈' 등 주력 제품이 입소문이 나면서다.
특히 영국의 성장세는 눈에 띄었다. 지난해초 법인을 설립했는데도 매출이 2배 이상 뛰었다. 이 법인장은 " 라네즈는 영국 시장에서 이미 소비자 4명 중 1명이 브랜드를 인지하고 있단 조사 결과가 있을 만큼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며 "브랜드 전략과 현지화 마케팅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단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또다른 인기 브랜드 코스알엑스 역시 유럽에서 대표 상품인 '스네일 뮤신'을 중심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달과 이달 파리와 런던에서 각각 진행한 현지 팝업 행사엔 각각 1000여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몰리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유럽 사업에서 유통과 판매에만 집중하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고객과의 접점을 넓혀가면서 팬덤을 형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5월 영국 현지인은 물론 해외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 런던 코벤트가든에서 라네즈의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를 연게 대표적이다. 영국 소비자들이 주력 제품 패키지 디자인과 색상을 활용한 공간에서 제품을 발라보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면서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행사였다. 이 법인장은 "일부 K뷰티 브랜드들의 경우 매우 빠르고 공격적으로 채널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브랜딩과 마케팅에 대한 충분한 투자없이 확장에만 집중하면 충성고객을 만들기 어렵고, 장기적으로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모레퍼시픽 유럽 법인의 목표는 신규 시장 개척이다. 이를 위해 최근 중동 지역 내 유력 유통사들과 브랜드 포트폴리오 및 진출 전략을 공유하는 자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법인장은 "영국 중심의 채널 다변화, 북유럽과 동유럽 시장 진출 등으로 신규 고객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며 성장세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며 "향후 중동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적극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영국 점령 나선 K컬처
최근 찾은 프랑스 파리의 유명 관광 명소인 샹젤리제 거리. 주요 명품 브랜드 로드숍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에서 평일 점심시간마다 기이한 광경이 연출됐다. 매일 직접 만든 김밥과 잡채, 삼각김밥은 물론 제육덮밥과 불고기덮밥, 비빔밥 등과 같은 즉석 요리를 팔고 있는 'K마트'에 인근 직장인들이 몰리며 매장 내 긴 줄이 늘어선 것. 실제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도시락 등을 훑어본 뒤 음료를 골라 계산대로 향하는 금발의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직장 동료들끼리 함께 매장을 방문하는 이들이 많아 단체 주문도 받고 있다. 한 스위스인 고객은 "파리로 출장 올 때마다 오는데 고를 메뉴가 많다"면서 "스위스에서도 K푸드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현장 판매 직원인 실야(Silya)씨도 "프랑스 직장인들이 주로 많이 오는데 단골이 있을 정도"라며 "매일 점심시간마다 줄이 늘어선다"고 덧붙였다.
K마트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서울매점'이란 한식당에도 매장 바깥까지 대기줄이 길었다. 떡볶이와 비빔밥이 인기 메뉴로 뜨면서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K푸드 맛집으로 떠오른 곳이다. 그러다 보니 택시를 타고 온 백발노인도 눈에 띄었고, 자리가 없다는 얘기에 되돌아가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다.
샹젤리제 거리에선 화장품 편집숍을 비롯해 마트 등 다양한 유통 채널에서 국내산 화장품 브랜드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대형 화장품 편집숍인 '세포라'엔 아모레퍼시픽의 라네즈 브랜드 제품을 팔고 있고, 마트 체인점인 '모노프릭스'엔 코스알엑스와 조선미녀 등 K뷰티 대표 브랜드가 대거 입점했다. 파리 곳곳에 CJ올리브영처럼 K뷰티만 파는 화장품 편집숍이 늘어난 것도 요즘 들어 달라진 풍경이다. 여기에 바게트의 나라 프랑스에서 현지화에 성공한 '파리바게뜨'는 방문 고객만 하루 평균 700~800명에 달할 정도로 파리지앵이 선택한 빵 맛집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유럽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은 한국 식자재 전용 마트가 아닌 런던 내 일반 마트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특히 런던 도심의 트라팔가 광장 동쪽에 있는 번화가인 채링크로스(Charing Cross) 일대는 흡사 코리아타운을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이다. 한국 잡화점인 '오세요'와 '서울플라자'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고, 맞은편엔 K뷰티 편집숍인 '퓨어서울'과 '모이다' 등이 문을 열었다. 바로 옆엔 '분식'을 간판에 내걸고 떡볶이와 김밥, 라면 등을 판매하는 가게가 성업 중이다. K잡화점에서 라면 등 한국 식재료를 구입한 뒤 K뷰티숍을 들러 코스알엑스 화장품을 써보고, 한국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는 코스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글로벌 화장품 유통업체 실리콘투가 운영하는 뷰티숍인 모이다 매장에서 만난 영국인 남성 애드워즈(Edwards·23세)씨는 "여드름 피부로 고생하다 한국 화장품을 쓰고 나아진 후 자주 방문하고 있다"며 "주변 친구들 가운데 80% 정도가 한국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