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국내 민간 기업이 러시아산 나프타 2만7000t를 확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의 제재를 뚫고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최영전 주미국대사관 재경관과 김태연 재경관보의 치열한 사투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20일 재정경제부 등에 따르면 중동 전쟁 여파로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비상이 걸리자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나프타 수출 통제를 지난 11일까지 한달간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이 기간 국내 민간 기업과 정부가 공조해 계약을 성사시켰고, 지난달 30일 러시아산 나프타 2만7000톤이 국내에 도착했다.
계약 성사 과정은 매우 지난했다. 당시 달러 중개은행이 결제 불가 입장을 내면서 기업이 달러화 외에 이종통화(루블화 등)로 결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다. 국내 은행도 이종통화 결제 시 미국의 금융·2차 제재 가능성을 우려했다. 미국이 제재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주지 않는 이상 사실상 수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여기서 '경제 외교관'인 재경관의 역할이 빛을 발했다. 미국의 확답을 얻는 과정이 매우 치열했는데, 실제로 미국 재무부는 이른바 '슈퍼갑'으로 담당자는 평소 연락하는 것조차 힘든 것으로 전해졌다.
최 재경관과 김 재경관보는 미국 재무부의 확답을 받기 위해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파고들었다. 이에 출장을 앞둔 미국 측 담당자가 한국의 사정을 고려해 출장을 떠나기 전 대직자를 정해두고 갔다. 통상적으로 담당자가 부재하면 소통 채널의 단절로 이어지나, 사전 인계 조치로 소통이 지속될 수 있었단 설명이다.
이들은 대직자에게도 연락을 지속했고 결국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다. 이때 '이종통화로 결제해도 제재가 없다'는 서면 보장도 받았다.
최 재경관은 "미국이 서면 형태로 보장해 준 것에 매우 놀랐다"며 "관련 내용을 서면으로 보장해주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만큼 처절하게 읍소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본은 시도조차 안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확보한 물량은 국내 월 사용량(약 400만t)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정부가 외교 채널을 가동해 제재를 면제받는 '공식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러시아산 나프타를 들여오려는데 결제가 문제돼 얼른 오팍(OFAC)과 협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빨리 승인을 받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물량이 갈 수 있어 급박한 상황이었다. 당시 주말이었는데도 재경관이 빠르게 해결했다"고 말했다.
독자들의 PICK!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오팍·The 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은 외국 자산을 통제하고 경제제재 대상을 판별하고 관리하는 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