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완화하면서 '종전' 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유통·식품기업들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한 불안한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섣불리 예상할 수 없어서다. 일각에선 전쟁이 끝나도 원재료 확보부터 제품 생산까지 시간이 걸리는 탓에 생산원가 부담이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는 169.38로 전월 대비 16.1% 급등했다. 이는 1998년 1월(17.8%) 이후 28년 2개월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이처럼 수입물가가 오를 경우 통상 2~3개월 후 각종 소비재에 전가된다.
업계에선 15년 전인 2011년 '아랍의 봄' 등 중동 사태때 고물가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시 리비아 내전과 이집트 정권 교체, 이란 대규모 시위 등으로 지정학적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그때 중동발 리스크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는 등 에너지 공급망이 마비됐고, 국내 경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급등하는 기름값을 잡기 위해 리터당 100원 저렴한 '알뜰주유소'를 도입했다. 결국 에너지 가격 불안 등으로 2010년 2.9%를 기록한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만에 4%까지 치솟았다. 라면과 쌀, 고기 등이 중심인 생활물가지수는 4.4%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가 막 지난 현재 시점에서 2011년과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재정경제부가 이날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4월호)'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2% 오르며 전월(2.0%)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물가상승 압력이 생산자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로 전이될 경우 15년전 '4%대 물가 악몽'이 현실화될 수 있다.
수입 원재료 비중이 높은 유통·식품업계의 타격이 심각한 상황인데 수입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 결국 생산 원가 부담으로 제품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 원부재료를 수입해 만드는 라면과 과자, 베이커리 등 가공식품부터 생선과 고기 등 수입 신선식품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들은 지금도 배럴당 100달러 안팎의 국제유가와 1500원선을 오가는 원/달러 환율 등으로 가격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가 민생경제 안정을 위해 가격을 누르고 있는 상황이지만 기업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진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공급망 불안에 환율 효과까지 겹쳐 원가 절감만으론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가격을 올릴 수 없는 환경에서 유가와 환율 등 외부 충격이 계속되면 경영상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