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왕이다 (고객감동 서비스)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 사랑합니다."
2014년 개봉한 염정아 주연의 영화 '카트'는 직원들의 이같은 구호와 함께 대형마트의 문을 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무대가 되는 '더 마트'(the Mart)라는 공간은 철저하게 갑과 을이 구분된 곳이다. 계산대 직원은 절도 의심사례를 마주해도 "죄송합니다 고객님"을 연발해야 하고, 근로자 휴게실엔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라는 표어가 나부낀다. 고객의 갑질에도 친절을 강요받던 직원들은 회사의 갑작스런 해고통보에 결국 참았던 울분을 터트린다. 카트를 바리케이트 삼아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형마트를 상징하는 카트는 1937년 실반 골드만이라는 미국 오클라호마 슈퍼마켓 체인 '험프티 덤프티' 운영자에 의해 개발됐다. 그는 매장은 점점 커지는데 고객은 장바구니만큼만 소비하는 것을 보고 접이식 의자에 바퀴를 다는 방식으로 장바구니를 키워 백만장자가 됐다. 카트의 발명을 유통혁명의 효시라고도 하는 배경이다.
국내에서 이 유통혁명이 적용된 것은 대형마트 시초인 이마트 창동점이 생긴 1993년 부터다. 해당 부지는 서울 북동부 상권을 노리던 미도파(현 롯데백화점 노원점)를 견제하기 위해 신세계가 매입한 땅이었다. 면적이 좁아 백화점을 입점시키기 곤란해지자 고심끝에 신세계는 1996년 유통시장 전면개방을 앞두고 창고형 할인점 콘셉트의 신사업을 출발시킨다. 이후 일산점, 안산점, 부평점, 분당점 등 서울 외곽 신도시 위주의 입점전략을 펼쳐 지역소비의 중심으로 성장시켰다. 당시 대형마트 신사업의 성공을 두고 "눈 감고 배트를 휘둘렀는데 홈련이 됐다"는 신세계 경영진의 회고가 전설처럼 회자된다.
대형마트는 2014년 쿠팡이 새벽배송을 시작하기 전까지 약 20년간 황금시대를 누렸다. 최고 전성기였던 2010년엔 전체 유통업 매출의 51.2%를 차지할 만큼 절대적이었다. 김인호·신현암이 쓴 책 '유통으로 그리는 돈의 지도'를 보면 "늘 소량 구매만 하던 소비자들이 카트에 물건을 산더미처럼 채우기 시작했다"며 "마치 가정행복의 크기가 카트에 담는 상품의 양에 비례하는 듯했다"고 했다.
그랬던 대형마트는 이제 유통업에서 8%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4인가구 중심의 대량구매 대신 1인가구 위주의 합리적 실속소비가 대세가 됐고 온라인 주문이 일상화되면서다. 더이상 카트는 '행복의 상징'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심지어 카트는 단절을 상징하는 수단이 됐다. 지난 13일 전국 점포에 기습 임시휴업을 발표한 홈플러스는 전국 매장에 카트를 줄세워 고객의 출입을 막았다. 까르푸(홈에버)까지 인수하며 이마트와 업계 1위를 다퉜던 대형마트가 전체 매장의 휴업을 단행한 것은 충격적인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다행히 지난 21일 회생법원이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취소했다. 파산하면 1만2000명 임직원을 비롯해 10만명이 영향을 받는다.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폭탄돌리기만 계속되는 그림이다. 지난해 회생절차에 들어간 이후 연장과 수정이 거듭됐고 지난 3일 회생폐지 결정이 나왔음에도 9월까지 또 한번 기회가 주어졌다.
그럼에도 정상화를 낙관하긴 어렵다. 수혈받는 2000억원의 긴급경영자금(DIP)으로는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근본적으로 아무리 '고객은 왕'이라고 외쳐도 이커머스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월 2회 의무휴업이나 심야 배송금지 등은 대형마트의 변화에 발목을 잡았다. 규제 일변도의 마트산업에서 '카트'같은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꿈같은 얘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