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거리감과 착시의 함정

손동영 기자
2016.02.17 02:36

멀리서 울창한 숲을 바라보는 상상을 해보자. 숲을 이루는 개별 나무보다 숲의 전체 실루엣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제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겨보면 거리가 줄어들수록 점차 개별 나무의 모양과 색에 시선이 가고 더 가까워지면 나무를 이루는 줄기와 이파리의 질감이 보일 것이다. 물리적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은 이렇게 거리와 함수관계에 있다. 전체를 조망하려면 대상과의 거리를 멀리해야 하고 구체적인 부분을 쪼개보려면 더 다가가야 한다는 것은 불가피한 법칙과도 같다. 초능력자가 아닌 다음에야 멀리서 부분을 확대해 보거나 가까이에서 전체를 눈에 구겨넣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묘한 구석이 있다. 멀리 있는 대상의 희미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는 것과 반대로 희미한 것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물리적 거리가 보이는 것을 결정하듯이 보이는 대상의 특성이 거리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뿌연 안개나 미세먼지 속에서 멀게 느껴지던 건물이 맑은 날 갑자기 눈앞에 다가온 듯 보이는 것처럼 대상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거리감이 달라진다. 이런 일은 물리적 대상을 넘어 추상적 개념을 다룰 때도 일어난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건은 구체적인 사례나 다양한 특징에 주목하는 반면 거리가 멀 때는 종합적 특성이나 질서에 주목한다. 더 나아가 거리감이 멀수록 복잡한 패턴보다 단순화되고 정돈된 질서를 더 선호하기도 한다.

공간에 물리적 거리가 있듯 사회엔 사회적 거리가 존재한다. 예컨대 대기업 사장과 신입사원들 간에 존재하는 사회적 거리는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거리가 멀수록 구체적 측면이 배제되고 추상적이거나 대표적인 특징이 부각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사장의 눈에는 신입사원들의 숲이 펼쳐지고 개별 신입사원의 특징과 개성, 상황은 빠르게 뒤섞여 평균에 수렴한다. 한 명의 사원이 업무에 소홀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이는 숲 전체의 상황으로 쉽게 비화한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사들을 보며 흐뭇해 하는 독재자처럼 거리가 먼 리더일수록 단순화된 질서를 선호한다. 무언가 조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사장은 사원들의 게으름을 방지하고 생산성을 높일 특단의 계획안을 내놓으라고 닦달한다. 결국 많은 이가 ‘더 열심히 일할 계획’을 세우느라 정작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우스운 상황이 펼쳐진다. 이 같은 촌극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다.

편하게 지내고자 네이버에 왔다는 직원 때문에 이해진 의장이 억장이 무너짐을 토로했다고 한다. 직원들의 나태함을 바로잡고 기업이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고픈 충정에서 비롯된 발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직원들을 노동력 단위로 바라보고 기업이 직면한 위기의 근본원인으로까지 지적한 것은 역설적으로 대표가 직원들을 바라보는 거리만 드러낸 것 같아 씁쓸하다. 자유롭고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이 필수인 산업에서 리더는 더 깨끗하고 통일된 그림을 그려내려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정해진 길에서 달리는 말은 채찍질을 할수록 더 빨리 가겠지만 길이 정해지지 않은 드넓은 벌판에서는 속도보다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유연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혁신은 환경의 다양성과 유연성에서 나온다. 멀리서 바라보는 리더는 공동체 속에 살아 움직이는 유연성과 다양성의 힘을 놓치기 쉽다. 세계적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수직적 의사소통구조를 해체하는 노력을 계속 경주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