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못하고 임금 덜 받는 여성, 정상입니까

권성희 부장
2016.03.22 05:30

[광화문]

호주 외교통상부는 지난해 25%에 미달하는 고위직급내 여성 비율을 2020년까지 40%대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외교통상부 전체 직원 가운데 여성 비율이 57%가 넘는데도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 비율이 떨어진다는데 문제 의식을 가진 것이다. 호주 외교통상부는 고위직급내 여성 비율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도 함께 도입했다. 출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재택근무를 허용하며 휴가 사용을 장려하는 내용이다.

고위직급내 여성 비율 확대는 외교통상부뿐만 아니라 호주 정부 모든 부처의 공통된 목표다. 총리내각부 산하 여성인력실이 정부 부처와 각종 위원회에서 여성 비율을 끌어 올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민간 기업에 대해서는 양성평등청이라는 정부 기관이 전체 근로자의 성별 구성, 임원의 성별 구성, 남녀간 임금격차 등을 보고 받아 양성평등을 유도하고 있다.

호주에 비해 미미하긴 하지만 국내에도 직장내 양성 평등을 위한 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13년 11월부터 상장사의 사업보고서 공시 때 임원들의 성별을 밝히도록 제도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법적으로 강제성은 없지만 기업 공시서식 작성기준의 임원 현황에 성별을 표기하도록 만들어 상장사가 자연스럽게 임원내 여성 비율을 공개하도록 했다. 여성 임원 비율을 높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된지 2년이 지나도록 여성 임원이 늘어나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여성관리자 패널조사’에 따르면 여성 관리자가 있는 직원 100인 이상 248개 기업의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중 여성 비율은 5%와 4%에 그쳤다.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이 많아 관리자로 승진시킬만한 인력풀 자체가 충분하지 않다"며 "역량이 되지 않는데 무조건 여성 임원수를 늘리려 한다면 오히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고 기업 생산성도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내 양성평등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호주에선 이런 고민이나 문제제기가 없을까. 이에 대해 게리 퀸란 호주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지난 8일 한국 기자들을 초청해 캔버라 정부청사에서 만난 자리에서 "고위직급내 여성 비율 목표치를 설정하자 사실상의 할당제(쿼터제)가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며 호주 내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고민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호주가 한국과 다른 점은 고위직급내 여성 비율을 높이기 위한 목표를 설정함과 동시에 실행방안을 함께 마련했다는 점과 양성평등을 조직에 대한 부담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의 중요한 방법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퀸란 차관보는 "여러 연구 결과 성별이 다양한 조직이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생산성도 더 높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며 "조직내 모든 직군에서 성별을 균형있게 맞추는 것이 관점과 아이디어를 확대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더 깊은 이해심을 갖고 대처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 출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재택근무를 늘리며 휴일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 표면적으로 비용 부담을 늘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창의적이고 더 활기 차고 더 생산성 있는 조직을 만드는 비결이라는 지적이다.

퀸란 차관보는 양성평등 정책이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남성에게 생계의 책임을 전담시켜 가사와 육아에서 소외시키는 것이 결국 남성에게도 손해라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남성에게도 인생의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리비 라이온스 호주 양성평등청장은 이에 대해 "양성평등은 궁극적으로 인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양성평등을 여성 권익의 문제로 국한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관점은 양성평등을 위한 각종 정책을 비용 부담의 문제로 인식시키고 남녀간 대결구도로 바라보게 만든다. 호주 정부처럼 성과와 생산성의 문제, 남녀 모두의 권리 문제로 바라본다면 양성평등은 국가 경쟁력 향상과 더불어 한국 남성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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