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부의 진정성, 한은 발권력의 조건

유엄식 기자
2016.05.09 17:01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문제를 놓고 정부와 한국은행의 줄다리기가 거듭되고 있다.

정부는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한은 발권력 동원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한은은 중앙은행 기본원칙에 어긋난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 인사들은 이번 국책은행 자본 확충만을 이유로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 편성이 쉽지 않다고 평가한다.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 국가재정법에 나열된 편성 요건에 부합되지 않고 설령 추경안을 만들더라도 여소야대로 재편된 국회 심의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정부 재정은 세금이기 때문에 국민 부담이 가중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렇다면 한은의 발권력은 국민들이 감내해야 될 부담이 재정투입보다 덜 할까.

한은 설명을 들어보면 이 방법도 재정투입 못지 않게 국민들에게 부담이 된다.

한은이 시중에 본원통화 공급을 늘리면 관리비용이 증가한다. 1.5% 기준금리를 유지하려면 시중에 풀린 돈을 다시 한은이 통화안정증권 발행 등을 통해 흡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자비용이 추가로 발생된다.

만약 국책은행 자본확충 용도로 발권력을 동원해 10조원을 쓴다면 이에 따른 이자비용만 연간 15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특히 회수가 어려운 출자방식으로 지원될 경우 손실 규모는 더 커진다. 통화량 증가로 돈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 택스(Tax)’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정부 재정이나 한은 발권력이나 최종적인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국책은행 자본확충 문제는 합의 과정의 타당성 확보가 중요하다. 한은이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부에 국회 설명과 동의를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가 이번 기업 구조조정의 불가피성과 시급성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작업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도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정부 책임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한은도 전향적으로 정부가 내민 손을 맞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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