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2등 국민 설움을 딛고 이란서 축배를

문성일 통합뉴스룸1부장
2016.05.14 07:02
[편집자주] 술자리에서 부담없이 나눌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얘기를 담으려 합니다. 너무 어렵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문제제기를 해보겠습니다.

11년 전인 2005년 여름, 이란의 최남단 '아쌀루에'를 찾았을 때 일입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쌍발비행기를 타고 입국심사를 위해 걸프해의 이란령인 키시섬을 경유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곤 하지만 당시만해도 한국은 이란과 일부 중동 산유국들 사이에선 2등 국가였습니다. 이 때문에 입국심사때 귀찮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쌀루에로 들어가기 위해 탑승해야 할 비행기는 '급유 30분, 조종사 식사 30분, 기내 청소 30분, 기타 30분 등'의 이유로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게 출발했습니다. 총을 메고 다니며 노려보는 공항내 경비들을 보면 항의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이런 과정들은 한국 근로자라면 모두 겪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쌀루에를 찾은 것은 2004년에 이어 두번째로, 현대건설이 시공한 사우스파 4~5단계 가스처리시설 준공식 취재가 목적이었습니다. 현지에서의 어려움은 계속됐습니다.

준공식 현장에선 이란과 발주처(ENI) 국가인 이탈리아 기자들이 자유롭게 취재하는데 비해 한국 기자 신분으론 시공업체 유니폼을 입어야만 했습니다. 현장 이곳 저곳을 함부로 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느끼게 됐습니다. '한국건설기업들이 해외에서 정말 어렵게 돈을 벌고 있구나'하는 사실을요. 사실 걸프해 인접 산유국들의 '갑질'은 적잖습니다.

발주처의 일방적 설계변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사기간 연장에도 추가 비용을 주지 않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급을 늦추는 사례도 많습니다. 명백한 클레임 사유에 해당되지만 추가 공사를 수주해야 할 '을'로선 피눈물을 흘리며 참아야 하기도 한답니다.

풀 한포기 제대로 나지 않는 해안가 불모지인 아쌀루에는 당시 몇 년전 만해도 불과 1500여명의 어민들이 사는 해안가 조그마한 어촌마을이었습니다. 이란 정부는 이런 황무지를 수만명이 거주하는 세계적인 석유화학 공업단지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우스파 4~5단계의 경우 걸프만 해저로부터 100킬로미터가 넘는 파이프를 연결, 하루 생산량만 5600만㎥(가정용으로만 쓴다면 한국에서 3~4일 정도 사용할 양)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가스를 생산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시공 환경은 최악이었습니다. 1~2분도 서있기 힘든 한낮 50~60도의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한국 근로자들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동남아인들과 함께 수킬로미터에 달하는 파이프를 미로처럼 엮어 본시설을 만들었습니다.

현장에서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사막 한 가운데 무려 1만5000여명이 동시에 거주할 수 있는 대규모 숙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sanction)로 전체 완공의 원대한 꿈은 멈췄지만, 총 25단계 중 당시 10단계까지 진행된 사우스파 프로젝트를 현대건설과 함께 대림산업, GS건설 등 한국건설기업들이 모두 참여하며 승승장구했었습니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올 5월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계기로 사우스파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제 유가 하락 등으로 해외, 특히 중동에서의 수주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우스파 추가 수주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양해각서(MOU) 수준이긴 하지만, 중동 국가들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실제 이번 MOU 체결에도 건설업계는 엄청난 공을 들였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한국기업들한테는 기회조차 오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 서방의 경제 제재로 한국기업들이 빠진 사이 중국과 유럽 기업들이 이란 시장을 대부분 잠식해 버렸습니다.

한때 700억달러를 넘었던 한국기업들의 해외건설 연간 수주 규모는 지난해 460억달러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2~3년 후 연간 해외건설 수주액은 100억~200억달러대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2017~2018년 이후 국내 주택시장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을 감안하면 해외에서의 수주 부진은 한국건설업계에도 조선·해운업 못지 않은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는 곧 현재보다 더한 경기 침체와 대량 해고사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결코 간과할 순 없습니다. 정부와 기업들의 해외 수주 노력을 정치적 이슈로만 바라봐선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정부의 책임있는 수주지원도 절실합니다. 보여주기식 정책이란 곱지 않은 시선을 벗어나기 위해선 기업들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진지하면서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평가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