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67 × 12875 ÷ 9087. 순간적으로 답이 떠오르는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아마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 두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인 뉴런은 약 5밀리초(1000분의5초)의 재설정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1초에 최대 200번 정도의 연산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인간은 복잡한 계산문제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컴퓨터는 1초에 수백만 번의 연산을 수행하는 수준에 이미 오래 전에 도달했다. 짧은 시간에 처리 가능한 정보의 양과 질을 따진다면 인간의 두뇌는 더 이상 컴퓨터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한편 우리는 색색가지 옷과 장신구를 걸친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아는 사람을 빠르고 정확히 찾아낸다. 멀리 있는 사람의 움직임이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실루엣만 보고도 누구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몇 개 별에서 복잡한 별자리를 읽어내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바위에서 사람의 얼굴을 보기도 한다.
인간의 두뇌는 논리적 정보처리보다 ‘패턴인식’에 훨씬 탁월하기 때문이다. 개별 뉴런은 매우 느리지만 뉴런들의 연결과 조합으로 만들어진 신경연결망은 특정 패턴의 기억과 인식에서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다. 요컨대 취약한 개체들이 모여 놀랍게 뛰어난 집합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군대개미는 떼를 지어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필요에 따라 서로 연결하여 서식지를 짓거나 허공에 다리를 만든다. 물론 그들에게 건축지식이 있거나 건축가 개미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주변에 있는 다른 개미들에게 반응하는데 이러한 국지적 반응이 모여 하나의 건축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침에 당신이 마시는 커피 한 잔의 가격은 원료공급자, 유통업자, 판매자, 소비자간 눈치작전을 통해 결정된다. 주변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고 따라 하는 과정에서 유행이 출현하고 타인들의 의견을 관찰하고 반응하는 과정에서 여론이 만들어진다. 이 모든 일은 누군가의 기획이나 명령이 아닌, 자율적 개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아래로부터의 질서’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일을 이해하는 데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 날아가는 새떼에서 지도자를 찾고 싶어 하고 벌떼는 여왕벌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한다. 촛불을 들고 나온 수백만 시민의 배후에 누군가 있을 거라 의심하며 심지어 사상이 불순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통제함으로써 문화와 예술을 정리(?)할 수 있을 거라 믿기도 한다. 그러나 군대개미의 일부를 제거해도 여전히 건축물은 만들어지고 온갖 정치적 탄압 속에서도 예술과 문화는 지속된다. 아래로부터의 질서를 강제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 오히려 집합체의 무한한 잠재력을 훼손한다.
세월호부터 메르스, 조류인플루엔자, 이밖에 수많은 위기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미흡했던 까닭은 아마도 모두가 (있지도 않은) 컨트롤타워만 찾기에 바빴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날 당신 두뇌의 뉴런 하나가 나머지 모두를 통제하려고 시도하거나 다른 모든 뉴런이 지시를 기다리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라. 두뇌의 신경망부터 개미떼, 새떼, 그리고 경제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집합체가 발휘하는 놀라운 능력의 전제조건은 바로 개체의 자율성과 다양성에 있다.
세상을 통제하고 단조롭게 만들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자. 미래는 소수 지도자가 아닌 삶의 현장 속 모두가 일구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