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선진국의 저실업·저임금 공존 의미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2017.07.27 04:45

일본경기가 전반적으로 호조를 보이면서 지난 5월 실업률은 3.1%에 그치고 구인자 수는 구직자 수의 1.49배에 달하는 등 고용이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전산업의 현금급여 총액으로 본 임금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로 0.6%에 그쳐 물가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은행은 2% 물가라는 정책목표의 달성시기를 기존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또다시 연기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기회복 하의 임금 정체는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전반에서 확인됐다. 미국의 6월 실업률은 4.4%로 거의 완전고용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임금상승세 부진으로 6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로 1.6%에 그쳤다.

저실업 하의 저임금·저물가 현상은 양적금융완화 정책에서 출구를 모색하기 시작한 선진국 금융정책 당국의 금리인상 속도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선진국의 이러한 저실업·저임금 현상이 어떤 이유로 지속되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국제금리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향방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우선 현재의 저실업 속의 임금정체가 일시적 현상이어서 앞으로 선진국에서 임금, 물가, 금리가 급등할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의 경우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대폭적인 금융긴축을 단행해 실업률이 급상승했으나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데는 시간이 소요된 바 있다. 이번의 경우 이와 반대로 강력한 디플레이션 심리 때문에 선진국 근로자나 경영자들이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행태가 만연되나 실업률이 계속 떨어지면 결국 임금과 물가가 상승세로 반전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저실업과 저임금의 동시진행 현상은 일시적 요인뿐만 아니라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글로벌하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AI(인공지능), 로봇 등의 기술혁신 효과가 부분적으로 임금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6월 포르투갈에서 개최된 유럽중앙은행(ECB)의 연차포럼에선 유로권 경제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목표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이유로 AI 및 이를 탑재한 로봇에 의한 임금억제 문제가 지적되었다.

물론 이노베이션은 결국 1인당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상승에 기여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런 효과가 나타날 것이지만 중앙은행 주최 포럼에서도 전통이론과 다른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것 자체가 주목되는 일이다.

또한 고용구조의 변화가 저실업과 저임금의 공존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40~50대의 사무직 정규직 남성 근로자의 임금이 특히 정체되고 있으며, 이들이 유통 및 서비스업이나 노인 간호산업 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넘쳐난다는 인력구조상의 미스매치 문제가 있다. 또한 일본을 포함한 각국 기업이 사내 교육 투자를 줄이고 그동안 비정규직을 활용해왔기 때문에 이들이 스킬 축적이나 생산성 향상 기회를 상실함으로써 생산성에 맞게 높은 임금을 받기가 어려운 구조도 나타나고 있다.

이상을 고려할 경우 선진국에선 당분간 임금, 물가, 금리의 동반 상승 압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경기회복과 고용확대가 임금상승으로 이어지고 각국에서 소비확대, 기업매출 확대라는 선순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저출산·인구고령화에 대한 불안감으로 위축되기 쉬운 소비심리나 디플레이션 심리를 개선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AI, 로봇 등 기술혁신의 효과를 활용하면서 근로자들의 직무능력과 스킬을 향상하고 생산성을 확대하는 노력을 착실히 전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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