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공정'과 '탁상행정'

채원배 산업2부장
2017.09.19 04:35

지금으로부터 3년여 전인 2014년 7월.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소셜미디어주와 바이오테크주 등의 가치가 고평가됐다며 버블(거품)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소셜미디어의 대표 기업인 페이스북은 당시 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발표했고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IT(정보기술) 전문가들도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소셜미디어를 과거 잣대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오래된 증시 격언에 '연준에 맞서지 말라(Don't fight the Fed!)'가 있지만 IT전문가들과 월가는 옐런에 맞선 것이다. 결과는 소셜미디어주의 승리였다. 마켓워치는 "페이스북은 옐런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꼬집었다.

그 후로 옐런 의장이 소셜미디어주와 바이오주에 대해 언급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페이스북 주가는 2014년 7월보다 2배반 가까이나 올랐다. 3년여 전 옐런의 소셜미디어주 거품 발언에 페이스북 주식을 판 투자자는 땅을 치고 후회하며 연준을 원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IT 전문가들이 3년 전 옐런 의장과 맞선 것과 비슷한 일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졌다. 중앙은행장을 상대로 한 건 아니지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맞서 IT업계가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김 위원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네이버의 미래 비전이 필요하다"며 이해진 네이버 전 의장(창업자)을 평가 절하했기 때문이다. 파장이 확산하자 김 위원장은 "공직자로서 더욱 자중하겠다"고 머리를 숙였으나 IT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IT산업을 모르는 탁상행정가'라는 비판이 여전하다.

IT업계만이 아니다. 공정위가 지난 13일 발표한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시장 현실을 무시한 입법이라는 유통업계의 비판 목소리가 높다. 공정위는 개정안에서 가맹사업의 심야영업 제한시간을 확대했는데, 이 안대로 시행되면 출근·등교시간인 오전 7~8시가 심야시간대가 된다. 공정위는 이번 개정안의 기대 효과로 '심야시간대 영업시간 단축시간이 늘어나 최저임금에 따른 가맹사업자의 인건비 부담이 줄어들 것'을 꼽았다. 하지만 오전 7~8시는 매출이 가장 많이 나오는 황금시간대여서 편의점 업계는 '탁상행정', '꼼수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쯤 되면 업계가 공정위에 묻고 싶은 게 있을 것 같다. 공정위 정책의 미래 비전이 무엇인지 말이다.

'을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는 정책', '골목상권 보호책', '독점을 막는 공정거래', '재벌개혁' 등 김 위원장 취임 후 공정위가 추진하는 정책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다. 시장의 경쟁 질서에 문제가 있다면 그걸 바로 잡는 건 '경제 검찰'인 공정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탁상행정으로 가서는 안 되며, 시장의 질서를 잡는다는 미명 아래 시장 자체를 무너뜨려서는 안될 것이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 직원들이 과로사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시대가 바뀌어 공정위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하는 것이다. 잘하기 위해서는 "공정위의 잣대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업계의 비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소비자의 선택과 편익을 외면한다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시간에 쫓겨 탁상행정 정책을 내놓는 우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시장, 새로운 가치를 인정하면서 경제 검찰의 역할을 해야 한다. 옛날 잣대로 시장의 경쟁 질서를 바로 잡겠다고 나서면 자칫 시장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망가진 시장에서 공정 거래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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