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재건축공화국

강기택 경제부장
2017.09.20 04:40

“빚 내 집 사라”던 초이노믹스 시대가 갔지만 재건축시장은 잇단 대책에도 불구하고 그리 식지 않은 듯하다. 지난주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의 ‘50층 재건축’ 정비계획안을 서울시가 사실상 허용하면서 서울의 재건축아파트 가격이 원상복귀했다.

투기과열지구 지정, 그에 따른 재건축조합원 분양권 전매제한과 재건축조합원 지위양도 등 예상보다 강했다던 정책의 ‘약발’이 시장의 관성에 밀린 셈이다. 한국에서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부자들이 올해 유망한 부동산 투자처로 재건축 아파트를 꼽았다는 조사(KB경영연구소 ‘2017 한국부자 보고서’)가 있었는데 몇 가지 규제로 사람들의 인식이 쉽사리 변하지는 않는 듯하다.

한때 내리막이었던 재건축아파트를 부동산시장의 최고 투자상품으로 만든 중요한 조치 중 하나는 2014년 9월 서울, 경기, 부산 등의 재건축연한을 최장 40년에서 30년으로 줄여놓은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이란 마약을 끝내 저버리지 못했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가 반대했지만 법 개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로 완급을 조절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10년은 기다려야 재건축이 될 것 같던 아파트가 곧장 재건축이 된다고 하니 20~25년 된 중고아파트의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1986년 준공된 양천구 목동 아파트부터 올랐고 1987~1989년 완공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등의 재건축아파트 가격은 거의 수직으로 뛰었다. 2015년 4월 분양가상한제 폐지, 그 이후 공공임대 의무공급비율 완화 등은 재건축아파트의 수익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이는 2013년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유예와 맞물려 상승 효과를 냈다.

저금리로 유동성이 넘치는 가운데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은 자산가들은 새로운 투자처가 생겼고 국내 건설경기 침체와 해외수주 부진으로 고전하던 건설사들은 10년 뒤 일거리가 앞당겨지면서 ‘대목’을 맞았다. 1000만원 수준이던 재건축아파트 이주비가 최근 7000만원까지 제시된 배경이다. 물론 이 비용은 일반분양자들이 부담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는 건설사의 법인세로, 지자체는 취득세와 등록세로 세수를 챙긴다.

특히 강남 일대에서 재건축아파트의 가격급등은 인근 일반 아파트의 매매가와 전월세가에 영향을 미쳤다. 재건축아파트의 멸실로 수급이 꼬였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재건축아파트의 미래 수익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재건축연한이 다가오는 아파트가 2016~2025년 227만가구이므로 강남구 개포동 등에서 재건축아파트를 허물면서 일어난 이른바 ‘멸실효과’는 재건축연한이 다가오는 분당, 평촌, 일산 등 1기 신도시에서 재연될 수 있다. 8·2대책이든 9·5 후속조치든 ‘30년 연한’을 그대로 두고 신규 공급 없이 멸실이 생기면 수급이 무너진다. 용적률 등의 제한으로 227만가구 전부가 사업성이 있지는 않겠지만 일부만 재건축한다고 해도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을 통한 공급으론 감당하기 벅찰 것이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부동산은 끝났다’는 저서에서 부동산을 인위적 경기부양책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 재산과세의 총액을 늘리지 않으면서 보유세 대 거래세 비중을 6대4 또는 7대3으로 바꾸는 것, 다주택자를 임대사업자로 끌어들이되 임대소득세를 납부하는 조건으로 양도소득세를 낮추는 빅딜, 개발이익 환수를 전제로 한 창의적 개발 허용 등을 말했다.

재건축연한을 단축할 당시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장이자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설계자인 그의 머릿속에 이미 들어 있을 것 같지만, 이런 원칙과 아울러 내놓을 또하나의 정책은 대규모 공급이 단기간에 불가능한 상황에서 재건축연한 조정, 안전진단 강화 등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재건축에 대한 수요 억제와 속도조절만으로 ‘집값 안정’이란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수급에 대한 통찰과 묘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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