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창업가 ‘김지영’을 위하여

강미선 기자
2018.05.24 04:0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우리밖에 없더라고요, 여자가.”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김지영’의 목소리는 떨렸다. ‘82년생 김지영’ 보다 8살 많은, 그러니까 40대 중반의 ‘74년생 김지영’이다.

소위 국내 명문 사립대학을 나와 굴지의 대기업 몇곳을 옮기며 20여년 착실히 직장 경력을 쌓던 그는 최근 사표를 내고 창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취재원으로 처음 만나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며 내가 봐 온 '김지영'은 "이러다 CEO(최고경영자)까지 오르겠다"는 말을 건넬 정도로 '실력파'였다.

일처리는 언제나 깔끔했고, 부서 회식자리와 노래방 분위기를 주도했으며, 전날 야근을 해도 아침이면 벌떡 일어나 가족들 식사와 자녀 등교까지 책임졌다. 그런 '김지영'이 40대 중반 나이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창업을 한다니. 적잖이 놀랄수밖에. 그는 한숨을 쉬며 사연이 길다고 했지만 수직적 조직문화, 끝나지 않는 육아, 연차가 쌓일수록 더 깨기 힘든 유리천장 등이 이유가 아니었을까 나름의 추측을 해본다.

친구와 함께 창업이라는 제2의 인생 도전에 나선 '김지영'은 걱정이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기존에 몸 담던 조직보다 스타트업 업계에 여성이 너무 없어서 놀랐다고 했다. 동료 창업가는 물론 유관기관, 창업지원 조직 등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여성이 극히 드물다는 얘기다. "다음주에 창업지원센터 입주사 심사가 있어요.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될까 모르겠는데 지원자 중에 여성창업가가 우리 뿐인 거 있죠." '김지영'은 이렇게 여성이 적은 환경이 낯설고 불안하다고 했다.

한국의 여성 창업가 비율은 두자릿수가 안될 정도로 적다. 한국스타트업생태계포럼이 2016년 발표한 백서에 따르면 서울의 여성 창업가 비율은 9%에 불과하다. 미국 실리콘밸리, 영국 런던, 이스라엘 텔아비브, 싱가포르 등 스타트업이 활성화된 주요 국가 도시는 18~24%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국내에서 스타트업 투자 등을 결정하는 심사역의 여성 비율도 7%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다양성 측면에서 여성 창업가 비율이 30~40%는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 친화적인 창업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사회초년생은 물론 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 경험이 단절됐던 여성들을 위한 창업정책이 절실하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여성창업지원책은 해외기업들의 국내 프로그램 일부이거나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지원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공통의 관심사와 고민을 갖고 서로 격려하며 이끌어줄수 있는 끈끈한 여성창업가 커뮤니티의 부재다.

우리 사회 '김지영'들이 성공 창업의 길을 닦아 또 다른 '김지영'의 멘토가 될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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