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국민연금의 독립

김익태 증권부장
2019.02.19 05:39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주식회사 제도 유지를 전제로 하는 탓이다. 주식 투자를 왜 하나. 주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다. 상법 상 보장된 권리다. 주식회사에서 주주들은 운명 공동체다. 그 운명은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회사의 주인인 주주가 경영진을 상대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장이다. 주총에서의 주주권 행사를 경영권 침해라며 방해하는 것은 재산권과 상법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일이다.

사실 소유지분 구조상 국민연금이 한 기업의 2대 주주라 해도 주총에서 표 대결을 통해 총수 일가를 이길 방법은 거의 없다. 이사 해임 등 특별결의 안건을 통과시키기도 어렵다. 한진그룹의 경우처럼 말도 안 되는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는 역할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연금 사회주의’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지나친 정치 논리다. 합리적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피터 드러커는 1976년 저서 ‘보이지 않는 혁명’에서 노동자가 주인인 퇴직연금 등 각종 연기금이 80년 대 중반쯤 미국 상장 주식의 70%를 보유, 기업 지배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라며 ‘연금 사회주의’를 언급했다. 이 역시 부정적 의미로 사용한 게 아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경영진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한다면 연금이 반대할까. 기업 이윤이 늘고 주가가 오르는데 그럴 리 없다. 수익률 제고를 지상가치로 여기는 연금은 기업들의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을 강요했다. 대량 해고와 노동 여건 악화 등 노동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 벌어졌다. 현재 미국 기업들은 여전히 노동자들이 아닌 전문 경영인들의 손에 좌지우지된다.

국민연금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국민들이 피 땀 흘려 개미처럼 모은 돈인 만큼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모든 의사 결정의 초점을 수익률에 맞춰야 하는 이유다. 국민연금의 개입은 경영진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주가와 기업 가치가 훼손될 때만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알토란 같은 국민들의 노후 재산이 보전될 수 있다. 결국 작금의 논의는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원칙) 제도를 어떻게 잘 운용해 연금의 주인인 국민에게 보다 많은 이익을 돌려주느냐가 돼야지 이를 경영권 침해라며 좌초시키려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주주권 행사에는 일체의 정치·감정적 사안이 배제돼야 한다. ‘가입자의 충성스런 집사’여야지 ‘정권의 집사’가 돼선 안 된다. 보건복지부 아래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가 있고, 청와대가 기금운용본부장을 임명한다. 복지부 장관은 기금운용위원장을 맡는다. 이런 지배구조로는 독립성 논란을 피할 길이 없다.

2004년 연기금의 주식투자와 의결권 행사를 가능케 한 ‘기금관리 기본법’을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반대했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대통령이었던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과 관련해 국민연금을 동원했고, 이는 탄핵과 구속의 주요 단서가 됐다. 최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 논의 자리에선 기금운영위원회 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극 실행 주문을 언급하며 주장을 관철하려 했던 일도 있었다.

이렇듯 국민연금의 힘이 막강해지다 보니 보수와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국민의 쌈짓돈을 조종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과거 기업이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으면 ‘서초동은 뭐하고 있냐’는 말이 나왔지만, 앞으론 ‘국민연금은 뭐하고 있냐’는 말이 나오게 생겼다”는 재계의 우려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낡고 고루한 연금 사회주의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정치권은 지금처럼 형식적인 아닌 실질적인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나아가 전문성 확보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별도 기구로 세우는 게 시급하다. 복지부 산하에 있는 한 국민연금의 독립은 절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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