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통할자 정세균의 초대장 [우보세]

세종=박준식 기자
2020.12.02 05:0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8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故) 김대중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그는 분쟁조정자다. 소리 없이 강하다는 클리셰로만 설명하기 부족하다. 이 남자, 무색무취인 줄 아는데 만나보면 예상과 다른 힘이 있다. 상대방을 누르려 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경청한다. 말을 듣다 보면 어느 새 빠져들게 하는 덕이 있다.

검란(檢亂)으로 비화한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반목을 두고 정세균 국무총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분은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 본연의 역할이다.

정 총리는 이미 지난달 초에 경고장을 보냈다. 취임 300일차 공관 간담회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좀 자숙하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사용하는 언어를 좀 더 절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의 파열음으로 국민들이 혼란해하지 않도록 공직자들로서 서로 삼가라고 내각 구성원을 '통할'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경고는 먹혀들지 않았다. 윤석열 총장이 지휘하는 검찰은 대통령과 정부의 '탈원전'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명분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의혹이라고 규정했지만 실제는 반격을 위한 파상공세였다. 타격지는 명확했다. 정책 결정을 내린 청와대를 향한 것이다.

사실상 에너지 정책에 대한 수사는 임명 권력인 검찰이 선출 권력의 정당성을 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제수사를 시작한 대전지검은 직전에 총장이 방문해 "등을 두드려준, 우리 검찰 가족"이다. 수장의 격려를 받은 수사관들은 행정공무원들의 절차와 재량권, 정책 결정 과정을 '범죄'로 보고 압수수색했다.

공직사회는 당장 요동치고 있다. "적극 행정을 하다가 적극적으로 수감될 수 있다"는 자조가 터진다. 청와대와 여당은 집권 후반기 레임덕을 직감하고 있다.

법무부는 윤석열 총장의 수사지휘를 아예 정치행위로 간주했다. 야당에서 보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이지만, 여당에서는 친인척 수사를 받는 총장의 반란으로 규정할 수 있다. 추미애 장관이 총장 직무를 정지시킨 건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검사들은 역시나 반세기 넘게 이어진 검사동일체 의식을 따른다. 상명하복, 직무승계권, 직무이전권을 중심으로 통일적 계층제를 구성하는 조직체란 인식 하에 총장에게 내려진 제재를 본인들의 것으로 동일시한다. 여권이 그토록 깨뜨리고자 한 검사들의 월권적 연대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법무부가 검찰총장 직무를 배제한 것에 대해 검찰 내 2인자인 차장까지 장관을 상대로 "한 발 물러나 달라"며 조직을 우선하는 태도를 보였다. 조직 내에선 총장과 조직을 위한 충정이지만, 밖에서는 국가가 아니라 구성체 안위를 먼저 걱정하며 스스로는 배신자가 되지 않겠다는 공표로 읽힌다.

결국 지켜보던 대통령마저 침묵을 깨고 "공직자들은 '선공후사'하라"고 마지막 주의지침을 내렸다. 명분이 누적됐고, 결국 국무총리의 시간이 왔다.

고심한 총리가 내놓은 해결책은 추-윤 두 사람의 동반사퇴다. 일단 두 사람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듯 싶다. 하지만 본인들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조국 전 장관은 한 달도 안돼 낙마했지만 추 장관은 저토록 집단적인 검사들과 그래도 한판 승부를 벌였다. 윤 총장도 퇴로를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국가를 위해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해보겠다고 공언한 만큼 공직자 직함을 달고 항명 수준에 머물 게 아니라 스스로 옷을 벗고 정치인으로 나서 국민 지지를 호소하는 게 도리다.

2020년 12월 정 총리가 내놓은 제안은 어쩌면 대권을 노리는 잠룡들에게 보내는 정식 초대장일 수 있다. 본질이 정치인이라면 자신도 그러하니 같이 나가서 내년에 한번 자웅을 겨뤄보자는 제안일 테다. 공무원 신분으로 시끄럽게 자기 정치를 하는 건 비겁하지 않느냐는 준엄한 꾸짖음이다. 국민이 이 과정을 다 지켜봤기 때문에 내년에 이 세 사람이 어떻게 붙을 지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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