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돈 때문에 극한 상황에 이른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게임을 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거액의 상금을 얻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 구슬치기 등 어린 시절 즐긴 놀이에서 진 사람을 "죽었다"고 선언하던 규칙을 따른다. 드라마에서는 놀랍게도 이들의 목숨을 정말로 앗아간다. 승리자는 목숨을 담보로 보상을 얻는다.
드라마는 다양한 층위의 전환과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20세기 놀이가 21세기 문화콘텐츠로 바뀌었다. 우리에게는 수백 년 전 문화자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활방식의 변화로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얼마 전 삶에도 문화자원이 넘쳐난다. '오징어게임'이 재발견한 어린이 놀이는 그중 하나다.
세기를 넘어 콘텐츠로 거듭난 놀이는 아날로그 공간을 디지털 공간으로, 오프라인 연결을 온라인 연결로 전환했다. 동양의 놀이에 서양 관객이 결합했고, 지역(로컬) 콘텐츠에 글로벌 플랫폼이 결합했다. 우리가 만든 문화콘텐츠를 세계가 즐기는 공식이 굳어진다. '오징어게임'은 창의적 소재와 인간의 근본적 욕구, 게임화라는 형식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관객의 호응을 끌어낸다.
'오징어게임'은 인터넷드라마, 즉 OTT(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드라마'는 중세 무대의 연극 이야기를 뜻하는 말이다. 20세기 초반에는 영화가 성행하면서 필름을 미디어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필름드라마' 개념이 생겨났다. 라디오와 TV가 시대를 선도하는 미디어가 되자 '라디오드라마'에 이어 'TV드라마'가 대세가 됐다. 인터넷이 널리 퍼지면서 웹사이트를 통해 선보인 이야기는 '웹드라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TV가 미디어의 주도권을 잡고 있을 때 '드라마'는 당연히 TV드라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뜻이 바뀌고 있다. 인터넷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OTT드라마가 '드라마'를 대표하는 개념이 될 것이다. '드라마'는 곧 OTT드라마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쓰이게 될 것이다.
드라마의 미디어와 플랫폼이 모두 이동하면서 관련산업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신문, 잡지, 방송처럼 콘텐츠를 제공하고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던 전통 미디어 대신 넷플릭스처럼 소비자의 구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의 시대가 왔다. 물론 유튜브처럼 광고와 구독을 혼합하는 플랫폼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런 플랫폼은 글로벌한 범위에서 운영된다. '오징어게임'은 글로벌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제작비와 정해진 이익을 제공하고 판권과 부가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에서 태어났다. 이 때문에 우리 콘텐츠가 글로벌 플랫폼에 예속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 유통망을 보유한 플랫폼이 아니었다면 '오징어게임'에 대한 세계적 호응이 일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콘텐츠는 지금까지 완성품 수출을 통해 기획·제작사가 이익을 얻는 구조로 '한류'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 투자를 얻어내는 대신 콘텐츠 유통을 위탁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기획·제작, 유통이 분담되면 콘텐츠 생태계는 더욱 역동하게 된다. 우리가 만든 콘텐츠는 그 과정에서 우리 문화의 막대한 부가가치를 생산하게 될 것이다.
토종 OTT를 키워 우리도 글로벌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획·제작을 통 크게 지원하면서 유통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콘텐츠 유통업에 뛰어들려면 그만한 자본이 뒷받침돼야 한다. 기업과 정부의 노력으로 글로벌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콘텐츠 생태계를 특정 국가가 모두 장악해야 한다는 국적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됐다면 위험하다. '오징어게임'은 지역 콘텐츠와 글로벌 플랫폼의 결합이 빚어낸 글로컬라이제이션의 성과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