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 41% 1주일 새 더 벌어져.' '○○○ 42.6%, ○○○ 42.7% 초박빙.' 유력 일간지와 인터넷신문의 최근 기사들 제목이다. 이번 대선처럼 엄청나게 많은 여론조사 보도가 횡행한 선거가 과거에도 있었던가. 진지한 토론은 사라지고 여론조사 숫자만 난무한다. 이제 언론의 선거보도는 오로지 승리가 목적인 스포츠경기를 중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이와 같은 보도가 한국신문협회 등이 스스로 제정한 '선거여론조사보도준칙'을 위배했다는 점이다. 보도준칙은 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거나 보도할 때 '(지지율이 오차범위 안에 있을 경우) 수치만을 나열해 제목을 선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제16조 제4항). 이 준칙이 스스로 밝혔듯이 '여론조사는 여론을 탐색하는 많은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며 '여론조사의 수치는 여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자료'일 뿐이기 때문이다(제3조). 보도준칙의 제정 취지는 그 전문에 구체적이고 자세히 규정됐다. 이 준칙은 2016년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자격미달 여론조사업체가 난립하면서 수준 낮은 조사가 많았고 여론조사 보도의 일반 원칙을 지키지 못한 보도행태가 문제되자 그 반성의 일환으로 업계가 자율적으로 제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언론들은 이 취지를 완전히 잊은 듯하다. 그들 스스로 여론조사를 사설기관에 의뢰하고 그 결과를 앞다퉈 보도하면서 정당과 후보가 지지율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도하는 기사들을 보고 있으면 선거에서 언론이 오히려 역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보도는 정치에서 주객이 전도된, 도착적 선거보도 행태여서다. 선거란 유권자의 정치적 지지를 정당과 후보를 통해 조직하고 확인하는 절차고 시민들 역시 자신의 이익과 선호에 따라 선거운동에 주체적으로 조응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이 모든 행위자를 일거에 소거해버리고 오로지 승패만을 확연히 부각해 선거를 하나의 스포츠 이벤트로 격하하는 것이다.
한편 정당과 후보의 선거운동이 여론조사와 언론에 종속된 연유에는 합법적 선거운동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하고 선거기간을 너무 짧게 규정한 공직선거법 자체의 문제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를테면 대선 180일 전인 지난해 9월10일 중앙선관위는 사전선거운동 금지를 천명하며 '정당이나 후보자가 설립·운영하는 기관·단체·조직 또는 시설은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으며, 그 기관·단체 등의 설립이나 활동내용을 선거구민에게 알리기 위해 정당·후보자의 명의나 그 명의를 유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전할 수 없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선관위는 끊임없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와 같은 추상적 문구를 매우 광범위하게 해석해 결과적으로 그 범위를 축소해왔다.
물론 선거운동을 적정한 수준에서 제한하는 것은 과거 관권개입과 부정조직선거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제는 그 규제가 지나쳐 선거운동 자체를 위축시키며 결과적으로 정치의 빈 공간을 여론조사를 앞세운 언론으로 대체해버린 것이다. 또한 공직선거법 제33조는 대통령선거를 23일로 제한했는데 그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문제도 있다. 우리와 달리 영국은 4~5주의 공식 선거운동기간을 두지만 사전선거운동에 제한이 없고 미국과 독일은 선거운동기간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다. 짧은 선거기간은 선거를 조급한 이벤트로 바꿔놓는 데 한몫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정논의가 필요하다.
짧은 시간 펼쳐지며 자극적인 언론보도가 목표가 된 이벤트 선거판에선 한 대선후보가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면 다른 후보는 경쟁적으로 발차기 퍼포먼스를 펼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퍼포먼스가 아니라 더 많은 토론과 참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