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길에 오른 일가족이 러시아군의 포격에 쓰러져 있고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도우러 달려들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 현장을 시민 한 명이 빠르게 지나친다. 죽은 일가족의 옷차림과 가방은 평화로울 때 여행을 떠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은 문명의 포장을 걷어내고 벌거벗은 야만을 드러낸다. 흔히 전쟁은 도덕적 평가를 넘어서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힘의 논리에 흔들림 없이 전쟁이 어떻게 시작됐고 얼마나 잔인했는지 철저히 도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마이클 왈저에 따르면 전쟁의 시작과 관련한 정당성은 침략전쟁과 정당방위 여부로 나뉜다. 모든 침략전쟁이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것은 무력행위가 본질적으로 상호작용에 따른 악순환 끝에 한계 없는 절대전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 수행과정에서 정당성은 전투수단이 법을 준수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전쟁은 법적으로 군대와 군인에게 살상할 권리를 주지만 살상시기와 방법, 대상을 제한한다. 당연히 아이, 노인, 여성, 포로, 언론인 등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살상하는 것은 금지된다.
국가의 영토적 통일성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는 것은 모두 침략으로 간주되며 침략전쟁은 인간의 권리와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범죄다. 반면 시민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방어전쟁은 정의롭게 여긴다. 민주주의가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면서 국가가 더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참전을 강제할 수 있기 때문에 침략은 강제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 자국 국민에 대한 독재이자 전쟁에 처하게 된 상대국가 국민에 대한 독재가 된다. 물론 러시아는 이미 비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유형에서도 탈락한 권위주의 국가다.
따라서 선제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자기방어의 필요성을 증명해야 한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을 집단학살하려는 신나치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개시한다고 주장했다. 인접국이 위협적 행위를 했을 때 세력균형을 위한 예방전쟁이나 상대국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선제공격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입증은 쉽지 않다.
예컨대 우크라이나는 집단살해범죄의 방지 및 처벌에 관한 협약을 위반한 것으로 러시아를 제소했고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러시아계를 상대로 집단학살이 이뤄진다는 증거가 없다며 러시아의 군사작전 즉각중지를 명령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역시 회원국들의 요청을 받아 러시아군의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하는 죄에 대한 사전조사에 착수했고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는 우크라이나 침략을 이유로 러시아의 회원자격을 중지하고 퇴출했다.
칸트는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는 자신의 유일한 존재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고 주권의 법적 정당성의 근거는 인권에 있으며 주권과 인권은 서로의 존재 근거를 상호 지시한다고 보았다. 즉 주권은 인권에 자신의 연원을 가지고 있고 국가는 인권이 진정한 법적 권한이기 위해 불가피한 조건이며 따라서 인권 없는 주권은 물리적 강제력일 뿐이고 주권 없는 인권은 이름뿐인 공허한 권리라고 본 것이다. 그러니까 러시아에 대항해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말에는 울림이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탈냉전질서의 종식과 세계적 군비경쟁의 가속화, 특히 GDP(국내총생산) 2% 이상 국방예산 증액에서 보듯이 독일의 군사역할 확대의 계기가 됐다. 점차 강화되는 강대국 중심의 질서에서 전쟁의 정당성과 전쟁 수행의 규범을 철저히 따지지 않으면 힘을 중심으로 한 절대주의가 득세하고 이는 곧 허무주의로 이어지며 허무주의는 결국 우리가 서 있는 토대를 파괴한다. 러시아는 힘을 앞세워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인류문명을 파괴한다. 푸틴을 막지 못한 러시아인들은 그 불명예 앞에 오랫동안 고통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