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으로 가깝지만 많은 면에서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일본, 그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과 확연히 다른 일본 열도에서 밥 먹듯이 빈번히 일어나는 각종 재난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지진, 매년 전국을 훑고 지나가는 태풍 등 비교적 '평온'한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정부나 국민 또는 기업들의 재난에 대한 대응력이 남다르고 어쩔 땐 의연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재난재해와 관련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발전해왔는데 최근에는 일본 굴지의 가스회사와 세탁소기업이 손을 잡고 지자체와 함께 재난대응용 '코인빨래방'을 전국으로 확대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전문 코인빨래방 브랜드 '블루스카이'를 전국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인 ㈜GIVY(지아이비)는 지난달 4주 연속 3개 지방자치단체와 1개 지역주민협의회와 재해협정을 체결한다고 발표하면서 관심을 받았는데 내용의 중심은 'LP가스'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빨래방을 비상사태 발생 시 그 지역에 거주하는 피해자들의 생활을 지원하고 시의 응급처치 대책에 협조한다는 협약이다.
'재난대응 빨래방' 탄생의 직접적인 배경은 2019년 지바현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이다. 그해 태풍 15호로 지바현의 약 2000개 전신주가 손상되고 붕괴됐으며 송전선을 연결하는 강철타워 2개가 붕괴돼 장기간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정전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정전을 피해 간 빨래방에 긴 줄을 선 광경을 본 ㈜에어워터가 빨래방회사 ㈜GIVY와 손잡고 가스에너지를 사용해 비상시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대응하는 재난 친화적인 빨래방 개발을 시작했다.
㈜에어워터는 일본 홋카이도와 동북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25만여곳에서 LP가스 판매소를 운영하는데 이전부터 LP가스를 활용한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면서 빨래방 시장에 본격 진입하기로 했고 지바현 사태를 계기로 사회에 기여할 차별화 재해대응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 재난대응 빨래방은 정전 때도 3일 이상 작동이 가능한 LP가스가 저장된 탱크가 있어 기본적인 세탁과 건조작업은 물론 가스에너지를 이용한 소형 발전기 및 리튬저장 배터리가 장착돼 조명을 공급하고 지역주민들이 자유롭게 방문해 휴대전화도 충전할 수 있다. 또한 가스를 활용해 최대 300명분의 식사를 만들 수 있는 특수 조리기구가 배치돼 있어 그야말로 재난 지원센터로서 중요한 기능을 모두 갖췄다.
2020년 1월 도치기현 우쓰노미야시에 첫 매장을 오픈한 후 꾸준히 이 재난 빨래방 사업을 확대해 현재 전국에 54개 점포를 오픈했는데 설치된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투자를 더욱 늘릴 계획이다.
이 외에 재난이 발생했을 때 피난민들의 난처한 경우를 파고든 신상품 개발도 눈에 띈다.
집에 물과 전기가 멈추고 할 수 없이 대피소에서 살 수밖에 없을 때 지자체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지원을 해주는데 그중 필수 지원내용이 세탁물 빨래다. 하지만 일반적인 빨래를 맡기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특히 여성들의 속옷빨래를 남에게 부탁하는 걸 꺼린다는 목소리를 토대로 개발된 재난상품이 있어 화제다.
'구조 란제리'(Rescue Lingerie)라는 이름의 이 상품은 재난 시 여성에게 필요한 속옷 상·하의를 포함한 5점 세트로 이뤄졌는데 가장 큰 특징은 제공된 가방에서 속옷의 세탁과 건조가 다 해결되는 특수한 기능을 갖췄다는 점이다. 가방에 1.5리터의 물, 세제와 함께 사용한 속옷을 넣고 흔든 후 물을 버리고 가방을 뒤집어서 검은 망 안에서 속옷을 말리면 건조까지 끝나는 일체형이다. 한 세트에 1만1500엔(약 11만원)으로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판매도 꾸준한 편이다.
세상의 어느 기업이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 회사의 매출을 늘려나가는 게 제일 큰 목표인 게 사실이지만 일본처럼 국가적 비극인 '재난'을 소재로 신제품 개발과 서비스마케팅 스킬이 발달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비즈니스가 수출로 이어지지 않고 내수로만 그치고 결국 사양사업이 되길 간절히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