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국정과제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벤처의 관심은 규제개혁에 쏠려 있다. 제2의 벤처붐이 불 정도로 인력과 재원은 충분하다. 문제는 규제다. 규제로 인해 '타다'처럼 잘 나가던 비즈니스 모델이 한순간에 침몰했다. 심지어 정부의 합법이란 유권해석에도 이해단체가 반발하면서 강남언니, 로톡은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벤처업계도 네거티브 규제를 문제 해결을 위한 만능열쇠로 주장한다. 금지한 것 이외 모두 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규제정책 슬로건이 네거티브 규제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지금은 금지하지 않지만 언제 규제가 생길지 모르는 그레이존이 생기면서 벤처는 더 불안해 하고 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문재인 정부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다. 그레이존을 남겨두지 않기 위해 공무원이 기존 규제를 확대 해석하도록 했다. 이렇게 규제를 제한하는 네거티브와 규제를 독려하는 포괄적이란 상반된 개념이 한 정책 슬로건에 담기게 됐다.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뮤직카우처럼 언제 정부가 규제할지 몰라 많은 벤처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실리콘벨리 혁신은 네거티브 규제 때문에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미국 규제시스템의 겉모습만 본 것이다. 본질은 그게 아니다. 미국은 대통령 행정명령은 물론 의회를 통과한 법안도 합리적 근거가 없으면 위헌 판결을 내리는 삼권분립이 확실한 국가다.
심지어 의회를 통과하고 대통령이 승인했다고 끝이 아니다. 시행령 마련 과정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면 법을 시행하지 않는다.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적 지지 속에서 의회를 통과한 식품안전현대화법에 서명했다.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일부 조항의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시행을 무기한 연기했다. 소비자단체는 법 위반이라며 2012년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의 심리는 2020년까지 이어졌다.
미국 규제의 본질은 과학적 사고다. 모든 국민은 자유롭게 사업할 권리가 있고 법률로만 금지한다는 철학은 미국이나 우리나라 모두 같다. 문제는 규제의 일관성과 객관적 근거의 존재 여부다. 우리나라는 논리나 근거가 확실하지 않아도 정치권이나 공무원이 언제든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 미국은 다르다. 규제를 시행했을 때 어떤 영향이 발생하는지 하나씩 검토한다.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데이터에 중심을 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합리적 근거에 따라 규제를 운영하겠다고 만든 각종 규제개혁 제도들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규제영향분석은 매우 형식적으로 운영된다. 중소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지만, 분석서에는 아무 영향 없다고 작성한다. 벤처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안과 전자상거래법안이 대표적이다.
규제샌드박스도 마찬가지다.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는 실증은 사라지고 규제 적용을 유예하는 특례만 남아버렸다. 정부는 문제 발생 소지가 있으면 특례를 허용하지 않는다. 설령 허용해도 문제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벤처가 원하는 사업 범위를 대폭 줄인다. 그렇다 보니 사업이 끝나고 나서 확인할 게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특례를 중단시킬 수는 없고 결국 2년이란 특례기간을 연장한다. 이런 희망 고문이 없다.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장점이 있다. 5년마다 기존 정책을 제로베이스에서 점검할 수 있다. 연속성을 중시하는 내각제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왜 실패했는지 분석해야 한다. 분석하지 않으면 또 실패한다. 아무쪼록 새 정부에서는 규제개혁 정책의 획기적 전환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