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근로자의 존엄성을 해치는 교육은 불법이다

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2023.06.14 02:05
양지훈 변호사

최근 한 OTT에 공개된 드라마에는 해병대 출신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동료들 역시 해병대 기수를 문신처럼 새긴 선후배들이고 사무실에는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해부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영웅적 격투신이 시종일관 펼쳐진다.

챗GPT가 화두로 떠오른 2023년에도 군대 이야기를 하는 자들은 '아재'다. 하지만 군대정신, 해병대정신이 유행한 것은 그리 먼 일이 아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유행한 '정신교육 강화프로그램'으로 해병대 캠프가 성행한 것이다.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30여년 동안 한국 대통령을 계속 차지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시민들도 군대문화를 한편으론 두려워하면서도 속으론 그 권위를 인정하는 습속을 떨쳐내지 못했다. 문제는 이런 강압적인 문화가 합리적 조직운영이 기대되는 기업에 침투했을 때 발생한다. 과거 사례를 확인해보자.

한 시중은행 입사 27년차 김모 차장(53)이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것은 2011년 봄이었다. 김 차장이 2박3일 일정으로 충남 보령의 해병대캠프에 갔다가 직원들과 실랑이가 발생했다. "27년 동안 사무직으로만 일한 데다 허리디스크에 6급 시각장애까지 갖고 있어 레펠을 타고 고무보트를 드는 등의 훈련이 그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입소 20분 만에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캠프 직원들은 회사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김 차장은 그들과 언성을 높이고 몸싸움까지 했다."(한겨레 2012년 6월12일자 기사)

이후 김 차장은 회사 인재개발부 직원으로부터 "무단이탈을 할 경우 연수규정 위반으로 징계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지만 퇴소를 강행했고 결국 회사는 그에게 정직 6개월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이를 승복할 수 없었던 김 차장은 징계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결국 법원의 판단에 이르게 된다.

우리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는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사용자가 실시한 연수가 표면적으로 내세운 목적 및 효과와 달리 연수 대상자의 업무능력 등의 향상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거나 다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근로계약에 따라 제공될 노무의 종류나 태양, 근로자의 경력이나 나이, 신체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연수 대상자의 인간으로서 품위나 인격권 등을 현저히 침해해 사회통념상 용인되기 어려운 정도에 이른 경우에는 이러한 연수의 실시가 업무지시와 다름없어 근로자가 이를 거부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가 성실의무 위반, 업무지시 위반 등의 징계사유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서울행정법원 2011구합44495 사건. 이 판단은 대법원까지 유지된다.)

말하자면 50대 초반 은행원인 차장에게 해병대 정신교육, 내무생활 교육, 타워레펠, 육상 IBS훈련, 해병축구, 해상 IBS훈련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교육인 것이고 이것이 업무능력 향상과도 무관하다고 본 것이다.

해병대캠프의 비극은 나중에 찾아왔다. 2013년 7월 충남 태안의 사설 해병대캠프에 참가한 고등학생 5명이 파도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해병대 교관들의 무리한 지시로 희생자들이 물에 빠졌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나중에 이들은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 당시 교관들은 전직 해병대 출신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부르짖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의 진짜 뜻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자. 업무능력과 무관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듣도록 하고 독후감 제출을 과제로 하거나 '명심보감'을 빽빽이 필사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정신'의 해병대 프로그램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인문학적 상상력과 사고력이 업무능력과 상관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회사가 조직적으로 근로자에게 강요할 때 피교육자들이 느낄 소외나 좌절을 함께 느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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