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기자들의 전화를 받곤 한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최근 뜨거운 관심의 대상인 어느 이차전지 종목에 대한 문의였다. 늘 그런 것처럼 난 이차전지 담당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센터장이라 종합적으로 보실 테니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아 이거 당황스럽네. 자연스럽게 컴플라이언스에 따라 특정한 종목에 대해 별도 의견을 말할 수는 없다고 하고 끊었다.
종목에 대한 질문은 늘 당황스럽다. 녹취되는 회사 전화라서는 아니다. 한 마디 한 마디 행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기자여서만도 아니다. 내가 담당하는 종목이 아니고, 특히나 시장의 이목이 집중된 종목이라면 더욱. 애널리스트라고 막연한 느낌이 없을 리가. 하지만 우리는 엄밀한 근거에 입각해 의견을 제시해야만 하는 직업이다.
언제나 주식시장에는 시장을 선도하는 업종 내지 산업이 있다.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PER나 PBR가 높지 않다. 그러다 수요가 몰려 주가가 계속 오르다 보면 PER와 PBR가 높아진다. 결국 밸류에이션이 적정한가로 논점이 이동한다. 밀레니엄 전후 인터넷과 통신장비들이 그랬다. 2007년의 손해보험주, 그리고 조선 및 해운주와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엔터테인먼트주, 태양광패널, 바이오주, 네이버와 카카오, 카카오뱅크 등 항상 그때는 그때의 주도주가 있었다. 주가는 미래를 반영해 줄달음치는데 실적이 좋아지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으니 밸류에이션이 논란이 되기 마련이다.
주식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과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 사이의 갈등은 몇천 년 전 철학자들도 고심한 문제였다.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한 말이다. 30년 넘게 중국 진한사를 연구한 노사학자 리카이위안은 '초망'에서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이미 발생한 일에 비해 더 본질적이고 더 철학적일 뿐 아니라 더 진실하다'고.
아직은 내연기관 위주지만 언젠가 모두가 전동화하는 세상. 그 세상에서 지배적인 사업자가 갖게 될 매출과 이익, 그리고 그 이익을 바탕으로 한 밸류에이션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다. 그런 미래를 주가가 반영하고 있다면 소위 Price to Dream으로나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작디작은 실적에서 출발하면 꿈은 허황해 보이는 게 당연할 것이다. 아마존이 그랬고, 구글도 그랬다.
하지만 꿈조차 평가해야 하는 것이 밸류에이션이다. 그 미래의 실현 가능성, 그리고 그 미래에 이 회사의 몫(점유율과 제품의 단가, 더 나아가 이익률)에 대한 연속적인 가정이 밸류에이션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가정의 출발점은 지금의 재무수치와 당장의 생산능력이다. 지금과 같이 당황스럽고 막막해질 때마다 나는 앞서간 사람의 글을 찾아보곤 한다. 2001년 그 혼란스러운 시기에 아마존이라는 꿈을 다룬 다모다란의 논문이다. 'The Dark Side of Valuation'에서 다모다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통적 밸류에이션의 체계는 어떤 회사라도 평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하다. 하지만 우리는 보다 유연하고 창조적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유연하고 창조적이 되더라도, 논문 마무리 부분의 충고에는 한 번 더 귀를 기울여 봄 직하다. "우리의 상대는 미래의 진짜 불확실성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측정하고 상대하려는 투자자들은 이러한 주식들에 투자하는데 수반되는 변동성에 대해서도 잘 준비돼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