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면 으레 우리는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며 한 해의 목표를 세우고 더 나은 미래, 더 큰 성공을 꿈꾼다. 계획한 대로 실천하지 못했을지라도 어김없이 새해가 되면 새로운 마음가짐과 함께 한 해 계획을 세우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가 '완벽한 인생의 설계자'가 된다. 우리는 늘 미래 어느 시점에 행복과 성공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현재의 일상보다 내일의 가능성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살아간다.
근래 국내에서 개봉한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완벽한 하루는 미래의 더 나은 무언가를 향한 과정이 아닌 과정 그 자체로 '온전한 현재'에 대한 이야기며 '불완전함 속의 완벽함'이란 역설을 담았다.
일본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고지 분)에게 청소는 단순한 '잡일'이 아니다. 그가 매일 온 정신을 집중해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모습은 자신만의 성소를 깨끗이 닦는 수도자의 모습과 닮았으며 내면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성스러운 노동행위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태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에우다이모니아'(행복)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선이자 '영혼의 활동이 탁월하게 발휘되는 품성 상태'를 행복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행복을 주관적인 감정이나 욕구충족, 화려한 성공에서 찾지 않고 인간 본성에 따른 탁월한 활동과 덕을 실천하는 충만한 삶의 상태에서 발견했다. 이처럼 탁월함이 발휘되는 순간 화장실 청소는 단순한 노동행위의 차원을 넘어 특별한 의미를 획득한다. 일의 의미는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따라 새롭게 부여되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 히라야마가 매일 카메라에 담는 '코모레비',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그의 삶을 은유하는 완벽한 상징이다. 겉보기엔 매일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나무를 찍는 단순한 행위지만 계절과 날씨, 시간에 따라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나뭇잎 사이의 빛처럼 반복되는 그의 일상 역시 미세한 차이와 생동감으로 가득하다. 무한촬영이 가능한 디지털카메라 대신 필름카메라의 제한된 프레임에 담아내는 순간들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놓치기 쉬운 삶의 찰나를 포착하는 도구가 된다. 예기치 않게 불쑥 찾아온 조카와 주변 사람들이 그의 고요한 일상에 파장을 일으키며 갈등과 긴장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에서 오는 일상의 흔들림이 오히려 삶의 리추얼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한다. 반복되는 루틴이 주는 균형과 안정된 리듬 가운데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져다주는 일상의 빛과 그림자는 불완전함 가운데 완벽함을 추구하고자 끊임없이 안간힘을 쓰는 우리 삶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 어느 때보다 큰 변화와 혼란이 예상되는 2025년을 시작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표나 더 완벽한 계획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작은 선택들과 루틴으로 일상을 채우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어느날 문득 찾아온 낯선 이들에 대한 환대가 하루를 더 충실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완벽한 하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