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 자체가 진료 행위죠."
최근에 만난 한 종양내과 의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정밀의료의 시대에 의사는 데이터를 환자처럼 다룬다. 어떤 질병에 무슨 약이 잘 듣는지, 환자에 따른 차이는 얼마나 나타나는지 확인해야 '맞춤 의료'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약을 쓰면서 모이는 의료 데이터는 임상시험과는 다를 수 있다. 신약이 허가받을 때 하는 임상시험은 제약사 주도로 이뤄진다. 성별, 연령, 병력이 다양한 환자를 모두 포함하기 어려워서 효과도, 부작용도 전부 알 수 없다.
반면 사용 과정에 쌓인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는 실사용근거(RWE)는 현실 환경에 실사용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돼 보다 실용적이고, 포괄적이다. 환자의 과거 병력, 진단 결과, 투약 정보, 치료비 등을 총망라하니 치료 효과나 비용 효과성을 판단하기 쉽다. 성별·연령을 불문하고 다양한 '한국인 데이터'가 기반이 되는 만큼 글로벌 임상시험에서는 몰랐던 부작용과 효과를 알아차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전자의무기록(EMR)이 대부분의 병·의원에 깔려있고 정부가 행위별 수가 등 비용을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RWE를 만드는 '재료'인 실사용데이터(RWD)가 세계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풍부하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이듯 RWD는 의사의 손을 거쳐 RWE로 바뀌어야 유효성, 안전성 등을 확인할 수가 있다. 문제는 의료기관이나 의사가 생존율과 같은 장기 데이터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받아내기가 까다롭다는 점이다. 익명 처리를 한 데이터마저 개인정보라면서, 다른 연구팀이 분석 중이라며 공개를 꺼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지난달 약가제도 개선방안이 통과하며 고가의 신약에 대한 급여 적용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신약 등재만 계속 이뤄질 수 없기에, 후속 평가에 따른 제한적 사용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제약사의 이익과 무관한 의사가 RWE를 원활히 수행한다면 정부는 이를 평가에 반영해 재정 건전성을 지키고, 환자는 새로운 신약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약이 개발되는 속도만큼 평가 또한 빨라야 국민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