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정부가 AI(인공지능)산업 육성과 함께 K콘텐츠 지원을 강화해 글로벌 빅5 문화강국을 실현하겠다는 정책목표를 제시했다.
AI산업의 발전을 위해 AI예산 비율을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증액하며 민간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하는 한편 소버린 AI를 비롯한 여러 화두를 제시했다. 콘텐츠산업에서도 AI의 활용은 이미 활발하다. 컴퓨터그래픽 활용 대비 AI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비용효과성(cost effectiveness) 측면에서 영화제작 등 AI를 활용한 저작물 창작이 앞으로 더욱 활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AI산업 발전이 앞서 강조되다 보니 저작권이 AI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란 오해를 받는 것 같다. 이 연장선에서 저작권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의 AI 학습을 위한 '텍스트·데이터마이닝'(TDM) 예외조항 도입도 논의된다. 일본·싱가포르의 저작권법, 유럽연합(EU)의 AI법(AI Act)이 각각 TDM 예외조항을 뒀다.
AI산업 육성논리에 사로잡혀 정부의 또 다른 정책목표인 문화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저작권 보호의 필요성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별도의 권리처리가 필요치 않은 데이터를 AI 학습에 사용하는 건 법적 문제가 안 되겠지만 저작권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저작물의 무단사용을 방치한다면 당장 문화산업의 발전을 넘어 AI산업의 발전까지 장기적으로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화강국을 전제로 저작권을 보호하면서 AI산업의 발전을 동시에 도모하기 위한 절묘한 균형점을 발견해야 한다. 이 균형점이 바로 AI 학습에 활용되는 저작물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다.
저작권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권리자인 저작권자가 자신의 어떤 저작물이 누구에 의해 어느 정도 사용됐는지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같은 사용내역에 대한 공시는 균형점의 발견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취지로 EU의 AI법은 '투명성 요건'(Transparency Requirement)을 둬 AI서비스 사업자가 AI 학습에 관한 저작물 사용목록을 규제당국에 제출하도록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현재 일반적인 AI 학습 데이터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 AI를 학습시키고 AI 결과물임을 표시하는 것은 저작권자에게 자신의 저작물 사용 여부와 사용 정도를 알리는 것으로 정당한 보상을 위한 기본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AI 학습의 경우 소송에서 증거관계를 파악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저작물에 대한 AI 학습이 이뤄지는 경우 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은 AI기본법에 따른 '고위험인공지능' 표시와는 다른 관점에서 입법이 필요하다.
AI의 발전을 앞세워 저작권이 물러서야 한다면서 TDM 예외만을 지속적으로 검토할 것이 아니라 AI 학습에 저작물을 사용하는 경우 이에 대한 공개가 이뤄지도록 하는 입법도 같이 검토돼야 한다. 그래야 국민주권정부가 공약한 '저작권 기반의 콘텐츠 강국'도 'AI산업 강국'과 함께 이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