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반복되는 참사, 과할 정도로 예방에 힘써야

[청계광장]반복되는 참사, 과할 정도로 예방에 힘써야

배성민 논설위원,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 장관
2026.03.27 02:00

지난 주 대전의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14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참담한 사고는 우리 사회에 익숙하지만 결코 익숙해져서는 안 될 질문을 다시 던진다. 수많은 법령과 촘촘한 점검에도 불구하고, 왜 산업 현장은 여전히 '사고를 기다리는 화약고'로 남아 있는가. 이번 화재는 리튬과 나트륨 등 금속 화재 대책, 가연성이 높은 샌드위치 패널 구조와 임의적 증개축 건조물 문제, 높아지는 복지 및 안전요구와 중소 제조업의 열악한 안전 투자 여력, 수만 개 사업장을 감당하기에 부족한 감독 인력,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흐릿해지는 안전 책임 현실 등이 겹쳐 만들어 낸 구조적 산물이다. 기후위기와 초고령 사회, 신기술과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산업안전보건 정책과제에 대해 이제는 단편적인 제도 보완을 넘어, 안전 관리의 패러다임을 뿌리째 바꿔야 할 때다.

미국 건국 공신 알렉산더 해밀턴은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더라도 국가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권한은 묵시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토마스 제퍼슨(3대 대통령)은 기록된 문구만을 절대시하는 엄격한 해석을 고수했다. 이 대립은 오늘날 규제 방식의 두 가지 철학으로 살아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산업안전 체계는 여전히 '제퍼슨식 설계'에 갇혀 있다. 세세한 조문으로 모든 위험을 특정하려 하지만, 현장의 위험은 늘 규정보다 빠르게 진화한다. 그 결과 기업들은 "이 항목만 충족하면 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갖을 유인이 있다. 소방설비 설치 기준을 교묘히 회피하거나, 법적 강제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위험한 작업 환경을 방치하는 것이 그 단면이다.

이에 대한 대안이 '해밀턴식 접근'—원칙 중심의 규제다. 정부는 "노동자의 생명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라"는 핵심 목표를 제시하고, 그 달성 방식은 기업의 자율과 책임에 맡기는 것이다. 1972년 영국의 '로빈스 보고서'가 강조했듯, 경직된 세목 규제보다 기업 스스로 위험을 인식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 훨씬 강력하다. 그 핵심 동력은 '위험성 평가' 제도에 있다. 이는 사업장이 스스로 유해 요인을 발굴하고 사고 가능성을 예측해 예방 대책을 실행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면피용 서류 작성'에 머물고 있다. 기업이 제출하는 자기선언 방식에 실효적 검증이 따르지 않고, 형식 미비에 대한 처벌도 모호하다 보니 컨설팅 업계의 표준 양식이 현장을 대체해 버린다. 제도는 있으나 작동하지 않는 까닭이다. 진정한 안전은 법전 속 조항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와 구체적인 행동 속에 존재한다. 이번 화재 현장에서도 노동자들은 "유증기 때문에 눈이 따갑고 폭발이 불안하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만약 경영진이 '안전보건 확보'라는 본질적 목표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안전은 낭비되는 비용이 아니라, 기업을 지탱하는 가장 수익성 높은 투자이자 경영의 출발점이다.

정부는 깨알 같은 규제를 만드는 설계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자율과 책임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돕는 정교한 감독자이자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 현장 점검은 무작위 실사 비율을 대폭 확대하고, 위험성 평가의 '내용'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감독 행정을 개편해야 한다. 중대재해 발생 시 각종 경제적 유인 구조를 재설계해 안전이 경영 손익에 직접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 자율권을 부여하되, 기본 의무를 방기하여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는 기업의 존립이 흔들릴 만큼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특히 노사가 함께 위험 요인을 찾아내는 협력 문화가 정착될 때 법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실질적인 예방이 완성된다.

기업들도 이제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한다"는 확고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법령의 조문을 넘어 '실질적인 안전보건 확보'라는 궁극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정식(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식(전 고용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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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민 논설위원

안녕하세요. 머니투데이 배성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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