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스러운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 정부를 대신해서 사과한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한국인 근로자 구금·석방 사태와 관련해 한 미국 기업 관계자로부터 받은 메시지다. 필자는 지난해 8월부터 1년 간 조지아주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지내며 현장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그곳에서 만난 기업인, 교수, 학생 대부분은 한국에 우호적이었다. 현대차그룹, 기아, SK온, 한화큐셀 등 100여개 기업이 진출하면서 조지아주는 '한국 기업의 전초기지'로 불렸고, 한국 기업들은 현지 사회와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그런 곳에서 이번 사태가 터졌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단속 과정에서 300명 넘는 한국인이 구금됐고, 현장은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76억 달러(약 10조5500억원)를 투자한 배터리 공장이었다. 단순한 법 집행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번 사건은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 환경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해외투자의 본질적 불확실성이 드러난 셈이다. 투자 단계에서는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약속받지만, 실제 건설과 운영에서는 전혀 다른 장벽과 마주한다. 특히 미국은 연방과 주 정부가 이민·노동 문제에서 각각 권한을 갖고 있어 해석 차이가 잦다.
이번 사태 역시 비자 조건과 노동 허가 범위에 대한 시각 차이가 빚은 결과였다. 작은 문구 하나가 수백 명의 구금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은 해외 투자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현지 지역 사회와의 관계도 간과할 수 없다. 조지아주는 한국 투자를 적극 환영했지만 갈등이 불거지자 '외국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부각됐다. 정치권과 당국, 지역 사회의 시각이 겹치면서 사건은 단순한 고용 문제가 아니라 외교 현안으로 확산됐다.
기업이 자본과 기술만으로 현지에 안착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미국 동남부 지역 한·미 경제인 모임인 한미동남부상공회의소의 김재천 회장이 "미국 진출 기업은 현지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지역사회와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해외 진출을 멈출 수는 없다. 한국 기업에게 글로벌 시장 개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중요한 것은 리스크 관리다. 단순한 투자와 고용에 머물지 않고 현지 사회와 신뢰를 쌓아야 한다. 교육·고용 지원과 지역사회 기여 같은 활동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외국 기업'이라는 낙인에 갇힐 수 있다.
정부 역할도 필수적이다. 외교 채널을 통해 노동·비자 제도의 합리적 개선을 요구하고, 해외 진출 기업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수조 원대 투자가 행정 절차 하나에 흔들린다면 이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신뢰도와 직결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운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민관 모두에게 해외 투자 전략을 다시 점검하라는 경고음이다. 법적 리스크, 사회적 갈등, 정치적 변수는 앞으로도 기업을 시험할 것이다. 한국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려면 자본과 기술을 넘어 위기관리와 신뢰 구축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번 사건이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 전략을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