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출근길이었다. 현관문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앞집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가지니, 오늘 날씨 알려줘!" 손녀딸 둘의 등교를 준비하는 중에 바쁜 목소리가 조금 더 높아져 현관 밖까지 들린 것이다. '참 신식 어르신이네' 생각하다 문득 말로 소통하는 AI(인공지능) 비서가 이젠 꽤 보편화됐나 싶었다. 우리집에서도 "시리야 알람 꺼"나 "알렉사, 피아노음악 틀어줘" 등의 요청은 일상적이다. 이런 대화형 AI는 간단한 자연어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데 가정용 음성비서뿐 아니라 인터넷사이트의 고객센터처럼 유형화된 업무를 처리하는 챗봇(ChatBot) 등에 사용된다.
생성형 AI로 불리는 챗GPT는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서 스스로 새로운 콘텐츠를 창작할 수 있는 기능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런 AI에도 자연어의 프롬프트(명령어)가 쓰이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선호하는 말투나 다양한 표현으로 대화하며 AI가 자신들의 니즈(needs)를 알아서 맞춰주도록 유도하곤 한다. 챗GPT가 사용자에게 일상적인 상호교감까지 제공하는 배경이다. 예전 세대가 재미로 본 오늘의 운세처럼 요즘 세대는 챗GPT가 골라주는 행운의 색이나 아이템을 확인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작게는 점심메뉴부터 크게는 여행계획이나 진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에 조언을 구하며 친구이자 멘토처럼 챗GPT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
똑똑하지만 잘난척하지 않고, 내 고민을 털어놓아도 비밀이 새어나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는 친구. 구체적으로 요구를 해야 하긴 하지만 공감과 위로 그리고 해결책을 동시에 주는 이상형. 내가 원하는 말투로 내가 원하는 답을 가져다주는 존재와 이야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 일인가! 이러한 대화 상대라면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오늘은 과거가 꿈꾸던 미래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2013년 영화 '그녀'(Her)는 마침 2025년을 배경으로 하는데 당시엔 아직 거칠었던 상상이 지금은 거의 현실이다. 영화는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다. 이혼 후 외롭게 사는 주인공은 목소리밖에 없는 '그녀'와 매일 대화하는데 그녀는 그 누구보다 그를 잘 이해하고 그의 일상 곳곳에서 빈틈을 채워주는 완벽한 존재다. 주인공의 시점에 이입돼서겠지만 관객 또한 다정한 목소리의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쉬운 연애는 없다. 그에게 최적화된 존재라지만 수많은 다른 사용자를 생각하면 질투와 의심도 싹튼다. 결국 '그녀'는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AI로 성장해 그를 떠난다.
멋진 대화 상대에 대한 판타지는 사실 이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6년에 나온 빌리에 드 릴라당의 SF소설 '미래의 이브'다. 소설에는 에디슨이라는 과학자가 등장하는데 당시 온갖 첨단 발명으로 동시대의 삶을 바꿔놓은 바로 그 토머스 에디슨이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그의 1877년 발명품인 축음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디슨의 친구는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대화를 할수록 멍청함만 드러나는 여자친구에게 절망해 자살까지 생각한다. 그런 친구를 위해 이 과학자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를 그대로 본뜬 인조인간을 만들고 거기에 고귀한 지성의 목소리가 담긴 축음기를 장착해 그야말로 '완벽한' 여성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아무리 지적으로 보인다 해도 타인의 사상이 녹음된 목소리가 제공하는 대화가 충만할 리 없다.
원하는 답을 해주는 AI 비서에 의존하는 것과 사용자에게 맞춰진 알고리즘에 따라 끊임없이 순환재생되는 동영상채널에 빠져드는 이유가 서로 무관치 않을 것이다. 거슬리는 것을 꾸짖고 거북한 것을 피하면 대화는 무의미하다. 혼잣말을 대화처럼 보이게 하는 기계들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