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샘'에 관심(關心)은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신경을 쓰거나 주의를 기울임. 또는 그런 마음이나 주의'라 정의돼 있다. 또 다른 의미로는 그 유명한 궁예의 볼 관(觀)을 쓰는 관심(觀心)이 있다. 드라마 '태조왕건'에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본다는 의미에서 관심법이 다뤄지지만 사실은 자신의 마음을 본다는 의미다. 관심(關心)은 그 대상이 외부를 향하는 경향이 있고 관심(觀心)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다는 특징이 있다. 공교롭게도 두 단어는 연관성이 있다. 대상에게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는 관심과 그런 의식의 현상을 바라보는 관심은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현상이다.
인터넷에선 관심에 따라붙는 말이 종자(種子)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음모론을 퍼뜨리거나 감정을 무분별하게 표출하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를 안 좋게 표현하는 게 '관심종자'라는 말이다. 얼굴을 대면하고는 쉽게 할 수 없는 말도 익명의 공간에선 하는데 사실 관심종자라는 말도 상대를 대면하면서 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줄여서 '관종'이라고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참 쓸쓸한 말이다. 대부분 사람은 관심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갈구한다는 말은 애타게 구한다는 말이듯 관심에 목말라 한다. 자신의 재력이나 외모, 학력, 능력, 지식, 교양, 문화적 소양, 지위 같은 것들을 특별하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것은 종족보존의 본능이 사회적 형태로 진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남들과 차별되는 특별한 존재가 돼야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그것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콩나물시루에서 저마다 머리를 비집고 올라오듯 한다.
그런 본능에 이끌린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관심(觀心)이다.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은 인지에 대한 인지를 메타인지로 설명하고 메타인지는 훈련을 통해 발달시킬 수 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17세기 영국 청교도였던 동명의 존 플라벨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12가지 마음 지킴원리' 중) 말했다. 본질을 직시하는 이들의 고금을 뛰어넘는 공감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관종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묻는다면 나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하고 싶다. 자신을 바라보고 통찰하면 이 세상 사람이 모두 자신과 비슷한 상황임을 알게 된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관심에 목말라 하고 있음을 통찰한다면 조금은 그 욕망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부모에게 미처 받지 못한 사랑, 친구와 연인과 주고받지 못한 우정과 사랑, 조직과 사회에서 받지 못한 관심들, 그 모든 결핍도 자기 자신을 향한 깊은 연민과 사랑으로 치유가 가능하다.
관심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이 세상은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겠지만 새로운 관심으로 비친다. 하늘의 구름도 길가의 잡초도 돌멩이도 모두 새롭다.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다. 일생을 관심에 목말라 갈구해온 우리가 쉴 만한 언덕은 대한민국에 숱하게 널렸다. 계곡의 약숫물로 갈증을 삭이고 색색이 아름다운 숲과 나무들도 보고 잘날 필요가 없는 바윗돌도 살피며 자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만이 우리를 쉬게 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가벼워질 뿐 완전히 사라진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끊임 없이 대상과 마주하며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다만 대책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삶에서 주체적인 삶으로 바뀌는 것이다. 알고 먹는 해골물, 손수 찾아가는 지옥과 같다. 화려한 색상이 허공에 가득한 이 계절이 유난히 쓸쓸하다고 느끼는 모든 이가 텅빈 충만을 체험하는 계절이 되기를 바란다. 텅빈 충만이란 무엇일까. 비어 있는 마음속 빈자리를 굳이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뭐! 이대로도 괜찮아! 그 한 조각 투명한 마음이 끊임없이 채워도 채워지지 않던 마지막 한 조각이 될 것이다.
세상 모든 관종에게 따스한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