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국민속 자리잡은 사보험 애써 외면하는 정부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2025.10.21 02:05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진료실에서 의사들은 진료행위만 하지는 않는다.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진료 외에도 진단서 발급, 소견서 작성부터 처음 보는 잡다한 서류들을 작성해야 한다.

최근 급격히 증가한 업무는 보험회사에 제출할 진단서를 발급하는 일이다. 특히 의정갈등으로 전공의가 없는 상황에서 밀려드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진료시간에 10건 가까운 진단서를 작성할 때는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진단서에 들어가야 할 문구를 가지고 환자와 다툴 때도 있다. 환자들은 보험사에서 어떤 문구가 들어가야 보험료를 준다고 하니 그런 내용을 넣어달라고 하고 의사 입장에선 진단서는 말 그대로 환자의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명과 치료내용만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다.

이런 문제들은 실손의료보험이 생기면서 나타났다. 1989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이 확대된 이후 누구나 병원에서 원하는 진료를 매우 평등하게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실손보험이 도입되고 확대발전하면서 실손보험이 있는 환자와 없는 환자는 은연중에 차별을 받기도 한다. 감기로 병원에 가지 않는 이상 간호사는 환자에게 실손보험이 있는지 제일 먼저 물어본다. 실손보험이 있을 때 많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 더 많은 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손보험은 1990년대 말 국민건강보험의 보완책으로 도입된 민영보험 상품이다. 본인이 부담한 의료비를 돌려받는다는 단순한 직관성 때문에 빠르게 확산했고 2024년 자료에 따르면 전 국민의 50% 이상이 가입하며 보편화했다. 제도 도입 초기엔 국민의 의료비 부담완화를 위한 보완적 성격이 강했지만 20여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실손보험은 다양한 보험상품으로 발전했고 그에 따른 새로운 문제점 역시 나타났다. 전체 보험금 지급액은 연 12조원을 넘어섰고 보험지급액 증가로 매년 보험가입자가 지불하는 보험료 또한 매년 인상된다. 예상치 못한 의료비 발생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입한 보험이 오히려 가계지출에 부담을 주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진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 입장에선 더 많은 보험혜택을 누리길 원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의료수요를 만들기도 하고 병원에서는 수입을 확대하기 위해 불필요한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려는 문제도 없지 않다. 병원과 환자의 이해가 부합하는 중간에 실손보험이 존재하면서 그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다. 실손보험이 이런 비용을 대신 지급하기 때문에 환자와 병원 모두 과잉진료에 대한 경각심이 약해졌고 일부 의료기관에선 '보험금 청구'가 하나의 수익구조로 자리잡았다.

실손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비 관리강화, 필요한 공보험 보장성 확대, 그리고 보험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정부는 비급여 항목의 표준화와 정보공개를 강화하고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OECD 평균 수준인 80% 이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또한 실손보험은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화하고 장기 유지자에겐 보험료 감면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실손보험이 처음엔 매우 순수한 뜻으로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공보험의 그늘 속에서 의료비 왜곡이 심화된다. 진정한 해법은 사보험의 제도적 억제나 활성화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공보험의 보장성 확대나 강화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경제력 향상에 따라 의료수요 역시 기본적인 보장에서 더 많은 의료서비스를 원한다. 무늬만 다른 사보험이 우리의 안방까지 들어와 있는데도 언제까지 사보험과 영리법인의 불인정으로 이런 상황을 타개해나갈 순 없다고 본다. 새로운 의료정책의 개발을 통해 국민적 요구를 충족하면서 의료의 공공성 역시 지켜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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