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2월28일 프랑스 파리의 그랑카페. 뤼미에르 형제는 시네마토그래프로 찍은 단편영화를 모아 상영회를 열었다. 당시 유사한 기술이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등장한 이후였기 때문에 이것을 최초의 영화상영이라 하는 데는 이견이 많다. 처음이든 아니든 그 야심찬 기획의 역사적 의미는 충분하다.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을 나눠주고 입장료를 받은 대중 상영으로서 당시 행사는 소위 '시네마'의 첫 모델이기 때문이다. 영화 전용 상영관으로서 '시네마'(키노)는 이후 '영화관'의 의미를 넘어 영화 그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 됐다.
영화관람 경험은 자주 꿈상태와 비교된다. 어둠 속에서 다양한 상상의 세계를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무기력한 상태가 서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관객에게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게 하고 가상의 해결들에 만족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변혁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등장했다. 이제는 오래된 말처럼 느껴지지만 TV가 바보상자라 불린 것도 비슷한 이유다. 볼거리에 몰리는 관객들을 어떻게든 가르치고 계몽해야 한다는 관점이었다.
행동하지 않고 보기만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서구철학의 오랜 전통으로부터 기인한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허구의 이미지들에 시선을 빼앗긴 노예의 삶을 시각화했고 시선의 속박에서 벗어나야만 진실과 자유에 도달할 수 있음을 설파했다. 허상이라는 '거짓됨'과 행동하지 못하는 '수동성'의 이미지는 영화관에 빠진 관객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만드는 이중고리였다. 한마디로 관객은 앎의 능력도 행동할 힘도 없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무지한 관객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배경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앎'이나 '행동'을 '보기' 위에 두는 시선은 보는 이로서의 관객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라지게 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똑똑한 관객, 행동하는 관객도 우선 관객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문화운동이 성공한 탓은 아니지만 요즘 영화관은 예전만큼 관객이 들지 않아 걱정이 크다. 2000년도 즈음 이집트 시나이반도의 사막에 세워진 '세상의 끝'이라는 야외영화관이 떠오른다. 넓은 사막에 약 150석의 목제 객석과 영사기 스크린 등을 설치했지만 발전시설 등의 문제로 상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 이름에 걸맞게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사막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빛바랜 객석은 이미 거의 폐허다. '세상의 끝'은 관객이 사라진 영화관의 모습인 것 같다.
다시 영화관의 시작, 1895년 상영회로 돌아가 보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그랑카페의 관객들은 그냥 평범한 조연이 아니었다. 뤼미에르 형제는 상영회를 자신들이 발명한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장치를 시연하는 자리로 기획했기에 그들이 초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진사나 사진기술자, 공학자나 발명가, 극장 관계자나 미디어산업 종사자였다고 한다. 그날 밤 '움직이는 사진'(moving pictures)의 가능성을 확인한 최초의 관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장치에 뛰어들었고 이후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데 기여한다. 영화적 특수효과를 탐구하며 '달세계 여행' 같은 기념비적 작품을 남긴 감독 조지 멜리에스는 그 최초의 관객 중 하나였다.
어쩌면 무기력하게 영화에 몰입하는 관객의 모습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다양한 디바이스를 사용해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서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골라보는 '포스트 시네마' 시대, 굳이 영화관을 찾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영을 기다리는 관객조차 수동적일 수 없다. 진정한 영화의 시대는 끝났다고 영화예술과 영화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어쩌면 변한 것은 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방식들일 뿐이다. 오랜 시간 무시당한 관객들이 산업과 시장을 바꾸고 있다. 관객이 있는 한 영화의 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