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발광체'가 되고 싶은 청룡영화상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한국영화학회장
2025.12.02 02:05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 한국영화학회장)

청룡영화상은 과연 '영화상'으로서 제 기능을 하고 있는가. 올해 시상식이 끝나자 곳곳에서 비판이 터져나왔다. 시상식에서 정작 '영화'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론가와 네티즌의 비판은 몇 가지로 집약된다. 제작부문 시상을 사전녹화 영상으로 대체한 점, 무대를 오직 배우와 감독만을 위해 꾸민 점, 애니메이션부문을 통째로 누락한 점, 영화 자체보다 축하공연이 더 큰 화제가 된 주객전도 현상 등이 도마에 올랐다.

청룡영화상은 대종상, 백상예술대상과 더불어 국내 3대 영화상으로 손꼽힌다. 대종상은 숱한 파행 끝에 파산위기를 겪다 최근에야 새 주인을 맞았고 백상예술대상은 TV부문을 포함한다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 이런 지형에서 청룡영화상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시상식은 이런 권위에 의문을 불러왔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따져보기 위해 시상식 직후 보도된 언론기사 100건을 무작위로 추출해 살펴봤다. 가장 많은 내용은 26건으로 현빈과 손예진이 나란히 수상했다는 이른바 '부부 주연상' 기사였다. 화제성을 위해 주최 측이 의도적으로 연출한 그림이 아니냐며 '생뚱맞다'는 반응까지 있었다. 두 번째론 23건의 기사가 화사와 박정민, 이찬혁, 보넥도 등의 축하공연을 다뤘다.

세 번째론 10건의 기사가 '대안이 없다'는 대세론 속에 시상식을 휩쓸며 7관왕에 오른 '어쩔수가없다'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압도적 결과였음에도 기사들은 영화에 대한 분석보다 그저 소식을 전달하는데 머물렀다. 수상작 자체에 집중해 영화의 의미를 파고든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배우와 스타의 가십이 지면을 뒤덮은 사이, 영화는 증발해버렸다. 영화의 뼈와 살을 만든 촬영, 편집, 기술 등 제작진을 다룬 기사는 아예 실종됐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장'(field) 이론을 통해 예술의 가치가 생산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예컨대 문학장은 출판사, 평론가, 문학상 등의 권위를 통해 위대한 작품, 즉 정전(正典)을 만들어낸다. 마찬가지로 영화장에서 영화상의 권위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관객에게 외면받던 영화도 유력 영화상을 받고 나면 위대한 작품으로 다시 주목받는 까닭이다.

영화상은 영화라는 발광체(發光體)가 뿜어내는 빛을 받아 이를 다시 비추는 반사체여야 한다. 그러나 이제 청룡영화상은 더이상 반사체로 남기를 거부하는 듯하다.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되고 싶은 것이다. 영화의 질적 성취와 무관하게 시상식 자체가 독립된 콘텐츠로서 소비되기를 바라는 모습이다. 물론 영화상 시상식이 하나의 콘텐츠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콘텐츠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영화여야 한다.

이런 상황은 침체한 한국영화의 현실을 반영한 고육지책의 결과일 수 있다. 마땅히 빛을 발한 영화가 드문 해였기에 영화상이라도 스스로 빛을 내야 했을지 모른다. 따라서 반사체와 발광체의 기능을 섞어 존재감을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지속돼선 곤란하다. 영화상의 본령은 대중이 놓친 영화를 재발견하고 조명하는 데 있다. 끊임없이 충실한 반사체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영화상의 생명력도 이어진다.

청룡영화상은 1963년 출범해 올해 46회를 맞았다. 연차가 횟수보다 많은 이유는 1974년부터 16년간 시상식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영화법 개정으로 한국영화가 외화수입을 위한 쿼터용이나 소위 '국책영화'의 들러리로 전락하며 질적 토대가 무너졌을 때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주최 측은 수상작을 가려낼 수 없다며 과감히 시상식을 중단했다.

지금 청룡영화상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쇼나 스타를 위한 가십만이 아니다.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는 착각을 멈추고 50년 전 선배들이 영화의 질적 하락 앞에서 시상식 중단을 선언한 그 서늘한 결기를 되새길 때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