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오늘날 이 명제를 거짓이라고 반박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이 말이 사실이라고 느끼지만 문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공간을 좁혀서 이렇게 말해보면 어떤가. 한국은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로봇 수를 의미하는 로봇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다. 국제로봇연맹이 발표한 '세계로보틱스 2024'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과 노동자의 비율에서 한국이 1만명당 1012대로 세계 평균 162대에 비해 6배 이상 높았다. 제조업 강국인 중국(470대) 독일(429대)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자동차공장의 컨베이어벨트에서 근로자 대신 자동화한 기계가 일하는 장면은 이미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인간의 고된 노동을 기계가 대체하는 모습은 진보의 상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숙련 육체노동 대신 인간만이 고유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정신노동'을 AI 또는 로봇이 대체한다면 우리는 어떤 감정에 빠지게 될까.
며칠 전 대형 회계법인이 기업 감사업무를 유치하는데 'AI를 활용해 회계인력 투입시간을 20% 감축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과거 젊은 회계사들이 수행한 단순 업무를 AI가 자동화해 비용을 낮출 수 있었고 업무수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법조계 역시 AI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다. 한 법률사무소는 사건위임 계약서에 AI 사용에 대한 조항을 추가해 의뢰인에게 동의여부를 묻고 자신들의 문서를 제공할 때도 AI에 의해 작성됐음을 명시키로 했다고 한다.
변호사들이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을 AI를 통해 작성하는 것은 이제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법률 AI를 통해 서면을 작성하는 사례를 듣고 우려를 표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매우 길고 복잡한 증거서류가 산적한 소송문서를 AI가 빠른 시간에 효율적으로 정리해줘서 업무에 도움을 받고 나니 변호사 개인이 이 문제를 온전하게 홀로 감당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보게 된 것이다. 직접 경험해보니 AI를 사용해 업무를 처리하는 변호사와 그렇지 못한 변호사는 단위시간당 생산성에서 너무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화이트칼라 사이에서 이미 AI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사무 근로자들이 기존 자료들을 AI로 활용해 오피스문서를 자동생성하는 것이 보편화했다. 투자를 담당하는 벤처캐피탈 심사역들도 기업을 리서치하고 실사자료를 모은 후 AI를 통해 의사결정에 도움을 받는다. 교수들도 논문을 작성할 때 자료의 요약과 연구 아이디어 도출에서 AI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최근 대규모 언어모델 AI의 한계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지만 현재 수준의 모델에서도 고급 정신노동으로 여기는 전문직들의 직무에도 AI가 끼치는 영향력은 파괴적이다. 인간과 같은 AGI(범용인공지능)의 출현 여부를 떠나 이미 노동시장은 '기계로 대체되는 노동력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시급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단계로 보인다.
인간 최고수 이세돌이 2016년 구글의 알파고에 맥없이 연패를 거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둑계의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프로기사들이 알파고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AI의 하수인이 돼 AI를 통해 바둑을 학습하게 된 것이다. 이를 취재한 장강명 작가는 '먼저 온 미래'에서 바둑기사들에게 비친 작가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이렇게 쓴다. '위대한 작품을 쓴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가 아니라 위대한 작품이 24시간 동안 288편 나오는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노동의 미래는 밝지 않다. 대격변이 예상되는 AI의 시대를 앞두고 가능한 한 공정하고 포용적인 방식으로 일자리를 보존하고 인간의 노동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정의로운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