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CES는 로봇산업이 단순한 기계제조를 넘어 AI와 데이터를 결합한 '지능형 가치사슬'로 진입했음을 알린 분기점이었다. 로봇은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자동화 장비에서 현실을 인식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피지컬 AI로 진화했다. 이 변화 속에서 한국·중국·일본 3국의 경쟁 역시 각자의 강점을 내세워 새로운 삼국지 구도를 형성했다.
이번 CES에서 한국의 기술적 존재감은 뚜렷했다. 보스턴다이나믹스가 공개한 아틀라스는 관절가동 범위와 균형제어 능력이 크게 개선돼 휴머노이드가 실제 제조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단계에 근접했음을 보여줬다. 한국은 근로자 1만명당 1012대의 로봇을 운용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밀도를 바탕으로 로봇을 실험의 대상이 아닌 생산수단으로 활용하는 기반을 이미 갖췄다. 이는 로봇 하드웨어와 제조기술 측면에서 한국이 세계 정상급 역량을 보유했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경쟁력은 속도와 공급망에 있다. 선전과 광저우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는 부품조달부터 시험생산, 대량생산까지를 하나의 도시권에서 해결한다. 중국 기업들은 시제품 단계를 최소화한 채 곧바로 양산단계에 진입하며 로봇을 에너지·물류·저고도 모빌리티와 결합한 산업인프라로 확장했다. 로봇은 중국에서 개별 제품이 아니라 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은 또 다른 축을 형성했다. 일본은 감속기와 모터 등 핵심부품과 소재분야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경쟁력을 유지한다. 로봇 원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이들 부품에서 일본이 축적한 기술력과 수직통합 구조는 공급망 관련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에 중요한 완충장치로 작용한다.
3국의 로봇산업 승부수는 '경험데이터의 축적'에 있다. 로봇의 성능이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차이는 얼마나 많은 현장에서 작동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시행착오를 학습했는지에서 갈린다. 테슬라와 웨이모가 실주행 데이터를 AI 학습으로 연결했듯 로봇 역시 현장경험이 쌓일수록 지능이 고도화한다. 한국은 하드웨어를 구현하는 역량은 충분하지만 현장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데이터로 체계화하는 구조는 아직 보완이 필요하다.
로봇산업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중요해졌다. 모든 산업을 아우르는 범용 로봇보다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한국이 경쟁력을 갖춘 분야에 투입할 수 있는 특화형 피지컬 AI부터 완성해야 한다. 여기에 정밀제조 역량과 IT보안을 결합한 클린로봇으로 안전과 신뢰가 중시되는 프리미엄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핵심부품의 국산화와 내재화로 하드웨어의 자립도를 높이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정부 역시 규제의 감독관을 넘어 실증인프라와 실증공간 조성을 통해 기업의 도전을 뒷받침하는 조력자로서 역할을 재정의해야 한다.
로봇 삼국지의 승부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국의 출발은 다소 늦었으나 산업현장 전반에서 축적되는 방대한 경험데이터는 강력한 자산이다. 누가 더 빠르게 현장의 경험을 지능형 데이터로 전환하느냐가 경쟁력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