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정보력 자강 없이는 국가 주권도 없다

배정석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
2026.02.25 02:05

배정석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

국가의 주권을 논할 때 우리는 흔히 영토, 군사력, 외교력을 떠올린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조용하면서도 치명적으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요소는 정보력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정보력이 약한 국가는 외부위협을 스스로 판단하고 대응할 능력을 상실하며 결국 주권국가로 존립하지 못하게 된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지난달 자국에서 체포돼 미국으로 압송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정권유지와 반체제 세력통제를 위해 자국 정보기관의 핵심기능을 쿠바 정보기관에 의존해왔다. 양국 간 정보협력은 이전 차베스 집권기부터 시작돼 2013년 마두로정권 출범 후 본격화했다.

쿠바 정보기관(DI)은 오랜 기간 독재체제를 유지하며 축적한 정보·방첩역량으로 냉전기에는 '중남미 최정예'로 불렸다. 미국 CIA의 정권 전복시도를 지속적으로 차단했을 뿐 아니라 장기간의 기만공작을 통해 오히려 CIA를 농락했다.

1961년 CIA가 주도한 피그스만 침공을 사전에 탐지해 무산시켰고 수많은 암살시도를 막아내 피델 카스트로는 50년 넘는 장기집권 끝에 90세로 자연사했다. 우고 차베스 사망 이후 정권의 정통성이 취약했고 경제붕괴와 대규모 시위, 군 내부의 동요가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에서 정권의 생존을 보장해줄 '검증된 세력'을 필요로 했던 마두로에게 쿠바는 가장 매력적인 파트너였을 것이다.

쿠바 정보기관은 베네수엘라 정보·보안조직의 설계, 감시시스템 구축, 요원교육은 물론 정치 엘리트와 군에 대한 동향파악까지 깊숙이 관여해왔다. 이는 통상적인 정보협력의 수준을 넘어 자국민 감시와 권력유지를 위한 핵심기능을 외국에 위탁한 것으로 정보주권의 포기이자 국가주권의 훼손이다.

그 결과 쿠바는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저가로 공급받고 다양한 이권을 챙겼으며 베네수엘라의 모든 정보를 장악해 전략적 우위에 서게 됐다. 반면 베네수엘라 국민은 쿠바의 기술과 인력을 지원받은 독재기구들의 감시와 인권침해에 시달려야 했다. 쿠바 정보기관이 미국의 위협에 대한 방첩에 성공했던 것은 자국민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베네수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정권 내부인사들이 마두로의 위치와 동선 등 핵심정보를 CIA에 제공했다.

정보기관은 보이지 않는 전장에서 외부위협을 탐지하고 국가의 전략적 판단을 가능케 한다. 이 기능이 외부에 종속되는 순간 국가는 스스로 결정할 능력을 상실한다. 오늘날의 위협은 군사적 침공뿐 아니라 사이버 공격, 인지전, 여론조작 등 비가시적 방식으로 전개된다. 정보기관의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국가에 대한 충성과 이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필수적이다. 특히 여론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방첩에 실패할 경우 민주주의도 함께 무너진다. 국가주권은 총과 미사일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누가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주권의 실체다. 정보주권이 없는 국가주권은 선언에 불과하다. 보이지 않는 전장에서 국가를 지켜내는 정보기관의 역할에 더 큰 관심과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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